“가장 느린 악기에 속도를 맞춥니다”
파주에 뜬 특별한 음악 울타리 ‘천천히 앙상블’

- 성인 발달장애인 12명과 비장애 시민 9명이 함께 만드는 ‘평생학습 동아리’ 출범
- “완벽한 연주보다 따뜻한 어우러짐이 목표”... 지역사회 고립 막는 문화 사랑방
- 지속 가능한 활동 위한 지자체·기관의 관심 및 전문 강사·악기 후원 절실
실력 겨루기가 아닌 “느려도 괜찮아, 우리가 맞출게”라는 철학 아래, 모두의 속도에 맞춰 함께 성장하는 특별한 오케스트라가 파주에 둥지를 틀었다. 성인 발달장애인과 비장애 시민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파주시 평생학습 동아리 ‘천천히 앙상블’이 그 주인공이다.
‘천천히 앙상블’은 현재 성인 발달장애 시민 12명(평균 연령 23세)과 이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비장애 시민 9명이 모여 첫걸음을 뗐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운정다누림장애인복지관 1층 강당에 모여 음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조율하고 있다.
“23.8세의 벽 허문다”... 성인 발달장애인의 안전한 사회적 울타리 지향
동아리의 출범 배경에는 가슴 아픈 사회적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몇 년 전 국내 자폐성 장애인의 평균 수명이 ‘23.8세’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학교를 졸업한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 곳을 잃은 채 홀로 고립되는 현실을 방증하는 수치다.
‘천천히 앙상블’에서 단원들에게 첼로와 바이올린 등을 지도하고 있는 전문 강사 윤정현(53) 씨는 이 모임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멋지게 합주하는 전문 오케스트라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 이탈이 나면 좀 어때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악기를 연주하다가, 힘들면 쉬고, 그냥 모여서 잡담하며 노는 것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어려운 곡을 멋지게 소화해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니까요. 성인 발달장애인도 시민으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모임의 진짜 목적입니다.”
악보 넘기기도 엄연한 ‘참여’... 음악으로 허무는 장애의 벽
이 동아리는 완벽한 하모니보다 ‘과정의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현악기를 다루기 힘든 단원이 있다면 캐스터네츠나 탬버린 같은 타악기로 함께하고, 노래나 춤에 재능이 있다면 온몸으로 음악을 표현한다. 심지어 음악 활동 자체가 낯선 친구라면 연주자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역할만 해도 훌륭한 단원으로 인정받는다.
윤 강사는 “비장애인의 시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이 제시간에 맞춰 공간에 찾아오고 함께 어울리는 것 자체가 이미 훌륭한 단원의 자격”이라며 모임이 지향하는 가치를 강조했다.
모임의 운영 방식도 독특하다. 동아리의 주체성을 높이기 위해 참여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청년들이 한 달씩 돌아가며 대표를 맡는다. 현재는 파주시 운정동에 거주하는 청년 정세현(24) 씨가 대표직을 수행하며 모임을 이끌고 있다.
공간·강사·악기 부족의 삼중고...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지원 절실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작은 동아리인 만큼, 현실적인 장벽도 높다.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전문 강사 확보’와 ‘안정적인 연습 공간’, 그리고 ‘보유 악기 부족’이다.
현재는 다누림장애인복지관의 배려로 주 1회 낮 시간에 모이고 있지만, 낮 시간에 주간보호센터나 직장에 다니는 발달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야간이나 주말로 시간을 확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상시 이용할 수 있는 연습 공간과 더 많은 재능기부 및 전문 강사진의 참여가 절실하다. 또한 단원들이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플루트,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 등의 악기 후원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천천히 앙상블’ 측은 향후 파주시 다누림장애인복지관과 맞은편 노인복지관 사이의 연결통로 등 열린 공간에서 ‘오픈 리허설’을 진행할 꿈을 꾸고 있다. 지나가던 어르신들과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소통하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 파주’를 만들기 위함이다.
동아리 관계자는 “단 21명의 단원으로 시작하지만, 이 모임이 더 단단하게 뿌리내려 파주시의 대표적인 장애·비장애 통합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파주시청을 비롯한 지방정부와 유관 기관, 그리고 뜻있는 시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천천히 앙상블’은 동아리와 함께 성장해 나갈 신입 발달장애인 단원 및 이들의 음악 버디가 되어줄 비장애인 시민 단원을 상시 모집하고 있다. 음악에 관심 있는 파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동아리 모집 및 개요 안내
동아리명: 천천히 앙상블(파주시 평생학습 동아리)
활동일시: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 3시 (주 1회)
활동장소: 운정다누림장애인복지관 1층 강당
신청방법: 매주 금요일 활동 시간 내 방문하여 동아리 대표에게 직접 신청
지원 및 후원 문의: 강사 윤정현 (010-9467-6523)
대표 정세현 (010-2761-1368)
실무 은소연 (010-4480-36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