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파주시국가유공자보훈단체협의회 김동준 회장
전쟁을 기록한 청년, 이제는 보훈 가족을 잇는 사람월남전 사진 촬영병에서 기업인으로… 파주에 뿌리내린 삶

김동준 파주시국가유공자보훈단체협의회 회장이 보훈회관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파주시 9개 보훈 단체를 대표하며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의 목소리 잇는 김동준 회장<사진>. 전쟁은 끝났지만, 기억은 끝나지 않았다.
젊은 시절 베트남 땅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한 청년이 있다. 그는 부대장의 당번병이자 사진 촬영병으로 전쟁의 현장을 기록했다. 전역 후에는 화학 분야에서 기술을 익혀 기업을 일궜고, 지금은 파주시 9개 보훈 단체를 대표하는 협의회장으로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의 목소리를 잇고 있다.
김동준 파주시국가유공자보훈단체협의회 회장의 삶은 특별한 영웅담보다 시대를 묵묵히 살아낸 한 사람의 기록에 가깝다. 전쟁의 기억을 품고 산업화의 현장을 지나 오늘의 보훈 현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헌신을 기억하는 마음이 보훈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함께했던 전우들과 국가유공자들을 먼저 이야기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도 '전우'와 '감사'였다.
■ 남해에서 시작된 삶
김 회장은 1949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부산과 전남 남부지역에서 보내며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 국내 화학업계에서 이름을 알리던 동산유지 부산공장에 입사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군 복무를 하게 됐고,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백마부대 제9사단 29연대에 배속됐다. 당시 김회장은 월남파병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지원하여 낯선 월남 땅으로 향했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닌호아 지역에서 복무한 그는 부대장의 당번병과 사진 촬영병을 맡았다. 비록 전투병은 아니었지만, 전쟁과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카메라를 통해 부대의 활동을 기록했고,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장병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쟁이 남긴 흔적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사진 한 장에는 당시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표정까지 함께 남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백마부대와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근황 사진을 살펴보며 당시의 기억을 들려주는 김동준 회장.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 총 대신 카메라를 들었던 청년
김 회장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사람들은 정찰 및 수색 작전의 선두에 섰던 첨병들이다. 울창한 밀림에서는 어디에 적이 숨어 있는지, 어떤 위험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다. 대열의 맨 앞에서 길을 열던 병사들은 부비트랩과 지뢰를 가장 먼저 마주해야 했다.
김 회장은 작전을 마친 장병들에게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고, 전쟁이 남긴 상처를 가까이에서 접했다. “같이 생활하던 전우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에게 월남전은 무용담이 아니다. 함께 청춘을 보냈던 전우들을 잊지 않기 위한 기억이며, 오늘날 보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삶의 한 부분이다.
■ 산업현장에서 다시 시작한 두 번째 인생
1973년 전역한 김 회장은 다시 산업현장으로 돌아왔다. 무궁화유지와 신양유지 등 화학업계에서 근무하며 세제와 유지, 화학제품 분야의 기술과 경험을 쌓았다. 생산 현장을 누비며 익힌 기술은 훗날 자신만의 회사를 세우는 밑거름이 됐다.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1995년 파주시 동패동에 화학제품 공장을 설립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라는 큰 시련을 맞았지만, 위기를 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마주했다.
새로운 제품을 연구·개발하며 시장의 변화를 읽었고, 기능성 미용비누인 ‘금비누’를 선보이며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다. 이후 ㈜동해씨엔씨(파주시 검산로 320, 탄현면 축현리)를 성장시키며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김 회장은 당시를 돌아보며 “사업도 결국 사람의 신뢰가 가장 큰 자산이었다”라고 말하며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약속을 지키고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회사를 오래가는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얘기한다.
사업은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고, 파주는 어느새 제2의 고향이 됐다. 처음에는 공장을 세운 기업인이었지만, 30여 년을 지역에서 생활하며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파주시민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파주시지회기에 선 김동준 회장. 그는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들의 목소리를 지역사회에 전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 자연스럽게 이어진 보훈 단체 활동
월남전 참전자라는 공통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전우들이 하나둘씩 고령이 되어 건강이 악화하거나,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김 회장은 보훈 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파주시지회장을 맡아 회원들과 함께했고, 이후에는 파주시 9개 보훈 단체를 대표하는 협의회장으로 활동하며 단체 간의 의견을 모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각 단체는 설립 목적과 활동이 조금씩 다르다. 독립유공자 유족, 전몰군경 유족, 상이군경, 참전유공자 등 저마다의 역사와 과제를 안고 있다. 김 회장은 협의회장의 역할을 ‘대표’보다 ‘연결’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각각의 단체마다 필요한 것이 조금씩 다릅니다. 서로의 의견을 잘 듣고 공감대를 만들어 관계기관과 지역사회에 전달하는 것이 협의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협의회가 어느 한 단체의 목소리만 대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공통의 과제를 함께 풀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 보훈은 과거를 기리는 일이 아니라 현재를 돌보는 일
김 회장이 자주 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보훈은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국가기념일에만 국가유공자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존중과 예우가 이어져야 진정한 보훈이라는 생각이다.
파주지역의 많은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은 이미 고령에 접어들었다. 병원 진료와 이동, 생활 지원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 회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관계기관에 전달하는 일도 협의회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생활 속에서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어야 합니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 불편한 점을 함께 살피고, 필요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의견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훈은 과거를 기념하는 일인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의 삶을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전우들을 잊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인터뷰 내내 김 회장이 가장 많이 꺼낸 이야기는 자신의 공적이 아니었다. 함께 청춘을 보냈던 전우들이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당시 함께했던 전우들은 대부분 고령이 됐다.
병마와 싸우는 이도 있고, 먼저 세상을 떠난 이도 적지 않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만큼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같이 생활했던 전우들이 한 분씩 세상을 떠날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분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가 특별한 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일상에서도 존중받고, 후손들이 그 희생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분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사실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사람을 잇는 역할
김 회장은 스스로 앞세우지 않는다. 기업을 일군 이야기보다 함께했던 전우들을 먼저 말하고, 자신이 맡은 자리보다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들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그래서 그의 삶은 화려하기보다 묵직하다.
남해에서 자란 한 청년은 월남전에서 카메라로 전쟁의 한 장면을 기록했고, 산업현장에서 땀 흘리며 삶을 일궜다. 그리고 지금은 지역의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들의 목소리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삶은 특별한 영웅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걸어온 시간이 오늘의 김동준 회장을 만들었다.
■ 파주시국가유공자보훈단체협의회
파주시 문화로 42. 보훈회관 206호
☎ 031) 944-8450, fax 031) 949-84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