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대

동해 푸른 파도에 실어 온 120년 ‘해동지중’의 기상

재파주 중동동문회, 강릉·양양 봄철 야유회 성황리 개최

입력 2026.05.26 22:58수정 2026.05.26 23:09김명익 객원기자 기자pajusidae@naver.com21
  • 강릉 안목항 해변에서 재파 중동 동문회 기념촬영.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안목항 카페거리에서 휴휴암까지… 부부 동반 문화로 꽃피운 가족 공동체의 대화합 길 위에서 돌아본 모교의 ‘자사고 신화’와 파주 땅에 뿌리 내린 끈끈한 선후배의 의리

  • ■ 설렘을 싣고 동해로 달리는 버스, 축제의 서막

5월 12일 이른 아침, 파주의 공기는 싱그러웠고 동문 가족을 태운 리무진 버스 안은 출발 전부터 이미 화기애애한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올해로 뜻깊은 개교 120주년을 맞이한 명문 사학, 중동고등학교의 재파주 동문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2026년 봄철 야유회’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부부 동반 참석자들을 포함해 총 25명의 동문 가족이 박형준(70회) 회장의 매끄러운 진행과 함께 출발을 지시하자 탑승한 버스는 강원도 강릉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창밖으로 흐르는 초여름의 풍경만큼이나 동문 가족의 가슴속에도 학창 시절의 푸른 추억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야, 너 학교 다닐 때 혁대 바클 기억나냐? 사자 대가리 문양 팍 박힌 거!” “말도 마세요 선배님, 학창 시절에 종로 바닥을 주름잡던 그 기세가 어디 가겠습니까!”

버스가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동안, 동문들의 입담은 멈출 줄 몰랐다. 세대를 뛰어넘는 유쾌한 수다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버스 안을 관통했다. “도대체 우리 모교 중동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며, 대한민국 교육사에서 어떤 발자취를 남긴 학교인가?” 대선배부터 막내 기수까지, 중동이라는 이름 하나로 어깨를 으쓱이게 만드는 위대한 역사의 이야기가 길 위에서 흥미진진하게 풀려나갔다.

■ 중동(中東)이란 무엇인가: ‘해동지중’의 역사에서 ‘강남 자사고 신화’까지

버스 크기가 커질 정도로 동문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이유는 모교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중동고등학교는 구한말인 1906년, 나라의 주권이 흔들리던 암흑기에 ‘교육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라는 일념 아래, 민초(民草)들의 야학교로 첫걸음을 뗐다.

한국 교육계의 거목인 백농 최규동 선생이 학교를 이끌며 정립한 ‘자주독립’과 ‘창조개척’의 정신은 곧 중동의 뼈대가 됐다.

당시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교사 시절, 중동은 명실상부한 민족 인재의 요람이었다. ‘해동지중(海東之中)’, 즉 ‘해동(동양)의 중심이 되자’라는 웅장한 명성은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수송동 시절의 중동고는 당대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여 국운을 논하고 미래를 설계하던 독보적인 명문 사학이었다.

그러던 중동은 1980년대 들어서며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한다. 서울 인구 분산과 강남 개발이라는 정부 정책에 발맞추어, 1984년 3월 정들었던 종로구 수송동 시대를 마감하고 강남구 일원동의 현대식 신축 교사로 이전을 감행한 것이다.

일원동 부지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 신축되며 쾌적한 교육 환경을 갖추었고, 1994년에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초대회장의 모교인 중동 중.고등학교의 학교 재단을 삼성그룹이 인수하면서 날개까지 달게 되었다.

중동의 저력은 2000년대 들어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2009년 정부의 교육 다양화 정책에 따라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로 지정되면서, 강남권은 물론 전국에서 유능하고 잠재력 높은 인재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사고 특유의 자율적이고 고도화된 교육 프로그램은 즉각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매년 서울대와 연고대를 비롯한 주요 명문대 합격자 수를 ‘세 자리 숫자’ 이상으로 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교육계의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특목고나 외고 수준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대입 실적과 학업 성취도를 증명해 낸 중동고는 이제 단순한 전통 명문을 넘어, 대한민국 교육을 선도하는 ‘최고의 명문 사립고’로 완벽히 자리매김했다.

올해로 개교 120주년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중동은 단 한 번도 시대의 뒤안길로 물러서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명성의 왕좌를 지켜왔다. 구한말 종로구 수송동의 ‘해동지중’ 정신이 21세기 강남 일원동의 ‘자사고 신화’로 고스란히 계승된 것이다. 버스 안에서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다시금 확인한 동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활짝 피어났다.

강원도 주문진 파도식당에서 맛난 점심을 즐기는 재파중동 동문회 회원들. 김명익 객원기자

■ 파주 땅에 뿌리 내린 중동의 기상: 재파중동 동문회의 아름다운 발자취

창밖으로 대관령의 웅장한 줄기가 보일 때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모교의 거대한 역사를 파주 땅에 뿌리 내리게 한 ‘재파주 중동동문회(재파중동)’의 역사로 이어졌다. 모교가 서울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었다면, 재파중동은 파주 지역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선후배 간 의리의 상징이었다.

재파중동의 역사는 19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8·9·10·14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지역 정계의 거목으로 활동한 박명근(42회) 동문이 초기 동문회의 깃발을 올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와 함께 최남구(시청 앞 정원 한정식), 송건섭(조리농협조합장), 김대영과 물심양면으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유광석(재성전기 대표) 등이 주축이 돼 초기 동문회의 뼈대를 단단히 다이후 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재파중동의 선후배 문화는 말 그대로 ‘낭만과 의리’ 그 자체였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회비나 비용 부담을 일절 지우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고, 모임이 있는 날이면 식사와 술자리를 전액 책임지며 밤새도록 정을 나눴다.

또한, 해마다 열린 ‘중동·배재·양정 3개교 친선 축구대회’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자주 우승을 거머쥐며 동문들의 자부심을 드높였던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다.

물론 늘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 오랜 시간 실무를 도맡아왔던 조증현(68회) 총무의 건강 악화와 주축 선배들의 고령화로 한 차례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중동인들은 위기 앞에서 강했다. 전영배(66회), 조증현(68회) 등은 “조금씩이라도 정기 회비를 걷어 동문회 자체의 자생력을 갖추자”라는 원칙의 대전환을 이루어 냈고, 이는 동문회가 중단 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파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교하, 운정신도시 등으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재파중동은 대전환을 맞이했다. 새로운 동문들이 대거 합류했고, 김태오(74회)를 중심으로 한 소장파 세대들이 전면에 나서며 젊은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들은 과거 선배 중심의 다소 엄격했던 모임 분위기에서 탈피해 ‘부부 동반 참여 문화’를 새롭게 정착시켰다. 가족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임으로 체질을 개선하면서 동문회 분위기는 한층 더 밝고 부드러운 가족 공동체로 진화했다.

과거 정치적 이해관계로 모임이 흔들렸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정치적 중립’을 철저한 불문율로 정착시킨 것도 재파중동의 성숙함을 보여준다. 현재 파주시 ‘갑’ 지역구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4선 국회의원의 고지에 오른 윤후덕(68회) 의원이 꾸준히 참석하고 있지만, 동문들은 정치 이슈로 인한 분란을 막기 위해 선거철이든 평시든 정치 관련 대화를 철저히 배제한다.

오직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동문회의 발전만을 논하며 서로를 조심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단단한 신뢰를 구축한 것이다.

현재 재파중동 동문회는 박형준(70회)이 회장을 맡아 탁월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조직을 이끌고 있으며, 대선배 이병진(59회)부터 정종화(87회) 막내 기수까지 세대를 초월한 완벽한 연결고리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동문의 부인들을 ‘중동여고 졸업생’ 동창이라 칭하고, 각종 모임에 함께하며 친가족과 같이 지내고 있다.

■ 푸른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울려 퍼진 중동인의 함성과 의리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덧 버스는 푸른 동해바다가 일렁이는 강릉에 도착해 있었다. 120년 모교의 역사와 재파중동의 발자취라는 단단한 정신적 자산을 품은 동문 가족들의 본격적인 2026년 봄철 야유회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첫 목적지인 강릉 안목항 커피거리에 도착하자, 가슴이 뻥 뚫리는 동해바다의 비경과 시원한 파도 소리가 동문들을 맞이했다. 동문 가족들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모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누는 동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일상의 피로를 잊은 채 파도 소리와 어우러진 대화 속에서 오랜만의 여유와 힐링을 만끽했다.

기분 좋은 티타임을 마친 동문들은 점심 식사를 위해 주문진의 소문난 맛집인 ‘파도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푸짐한 로컬 만찬이 상위에 펼쳐지자, 식당 안은 이내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동해의 신선한 맛이 고스란히 담긴 각종 생선회와 시원하면서도 깊은맛을 내는 생대구 맑은탕은 ‘엄지 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정답게 잔을 부딪치며 서로의 건강과 동문회의 발전을 기원하는 건배사가 이어졌고, 식당 내부에는 중동인의 유쾌한 대화와 정겨운 웃음소리가 쉼 없이 흘러넘쳤다.

식사 후에는 생동감이 가득한 ‘주문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시장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를 느끼며 가족들에게 선물할 건어물을 고르고, 상인들과 정겨운 흥정을 벌이기도 했다. 격식과 권위를 내려놓고 모두가 친구이자 형제처럼 어우러져 시장통을 누비는 모습에서 재파중동만의 정겹고 소탈한 정서가 그대로 묻어났다.

야유회의 마지막 여정은 황어 떼가 엄청나게 몰려드는 것으로 알려진 양양의 사찰 ‘휴휴암(休休庵)’이었다. ‘쉬고 또 쉰다’라는 사찰의 이름처럼, 동문들은 바닷가 너럭바위 위에 서서 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일상의 번뇌를 온전히 씻어냈다.

거대한 해수관음상 앞에서 동문 가족들은 저마다의 가정 평안과 자녀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아 두 손을 모았다. 부부 동반으로 참석한 동문들은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배경으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남기며 이번 야유회의 아름다운 추억을 사진첩에 담았다.

강원도 양양의 사찰 휴휴암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재파중동 동문회 회원들.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 "이제는 진짜 가족"… 헌신과 소망이 만든 향후 100년의 약속

재파중동이 자랑하는 부부 동반 문화의 진정성은 현장에서 터져 나온 생생한 소감들로 더욱 빛났다. 김태오(74회)의 옆지기, 박홍연(중동여고 74회)에게 이제 남편의 고교 동문회는 단순한 ‘남의 모임’이 아니다. 3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야유회와 정기 모임을 함께해 오며, 이제는 동문 본인들보다 더 가까운 진짜 가족이 됐기 때문이다.

박홍연은 “동문회 언니·동생들과 함께 웃고,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라며 환한 미소와 함께 “이런 화창한 봄날같이 따뜻한 인연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깊은 애정을 담아 보냈다.

뒤이어 재파중동 동문회의 최고 연장자이자, 든든한 버팀목인 80세의 멋쟁이 이병진(59회)의 연륜 묻어나는 소감은 모두의 가슴을 울렸다.

이병진 동문은 “모처럼 강릉까지 먼 길을 동문들과 함께 이동하며 정을 나누니 무척 즐겁고 뜻깊은 하루였다.”라고 소회를 밝히며, “이런 훌륭한 자리가 매년 봄·가을마다 꾸준히 이어져 동문들이 일상을 벗어나 색다른 환경 속에서 돈독한 우정을 나누길 바란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동시에 선배로서 동문회의 미래를 향한 애정 어린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동문회가 점점 고령화되고 젊은 후배들의 참여가 점차 줄어드는 현실이 선배로서 다소 안타깝다”라고 짚으며, “우리 동문회가 앞으로 파주 지역의 유능한 후배 동문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참여를 이끌어서, 세대와 세대를 단단하게 잇는 더욱 활기찬 동문회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라고 강조해 동문들의 큰 공감을 받았다.

이처럼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바쁘게 발을 동동 구른 이들이 있었다. 바로 실무를 책임진 김진영(75회) 총무와 그의 아내 이진영(중동여고 75회) 부부였다.

한 달 전부터 코스를 회장과 의논하고, 주문진 파도식당을 예약하며, 오가는 길에 먹으라고 준비한 김밥과 음료수와 다과 등까지 김진영 총무 부부의 세심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선배들의 불편함을 살피고 후배들을 다정하게 챙긴 이들 총무 부부의 값진 헌신이 있었기에, 25명의 대가족은 그 어떤 걱정도 없이 온전한 휴식과 화합을 즐길 수 있었다. 파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동문들의 얼굴에는 어린 시절 소풍을 나온 듯한 천진난만한 미소가 가득했다.

59회 대선배부터 젊은 후배 기수들, 그리고 부부 동반으로 함께해 준 가족들까지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완벽한 화합을 보여준 이번 5월 12일 야유회는 재파중동 동문회 역사에 또 하나의 찬란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구한말 종로구 수송동에서 피어난 ‘해동지중’의 위대한 기상은 이제 파주 땅에서 향후 100년을 지속할 아름다운 선후배 간의 동행으로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중동의 이름으로 하나 된 재파주 중동동문회의 무궁한 발전과 건승을 기원한다.

재파주 중동동문회

중동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파주에 거주하거나 파주의 사업장에 다니는 동문을 찾습니다!

회장 박형준(70회) 010 -5495 -1078 / 총무 김진영(75회) 010 - 5651-3095

파도식당 (대표: 박주연)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로 168 (☎ 033 - 662 - 4166)

김명익 객원기자 기자
pajusid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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