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81번째 생일을 맞은 식목일이 조용히 지나갔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에 식목일의 역사를 되새김하는 것도 우리의 의무이다.
식목일은 광복 다음 해인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이 제정했다.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성업을 완수한 날이 677년 2월 25일이다.
조선 성종이 문무백관과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친경을 한 날이 1493년 3월 10일이다. 그날들의 의미를 담아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제정한 날이 4월 5일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를 자세히 보자. 그 나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한번 느껴보자.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도 우리 선조들은 1천 년 사는 소나무를 심었다. 그 숲에 만년 사는 학이 노니는 꿈을 꾸었다.
그 덕에 우리 산천은 붓질 없어도 천년 묵은 옛 그림이었고, 그 숲에서 흐르는 시냇물은 현이 없어도 만년 울리는 거문고였다. 그렇게 가꾼 낙락장송들이 일제의 전쟁물자로 베어지고 뽑히는 아픔을 겪었다.
금수강산을 회복하자고 시작한 꿈은 6.25 전쟁으로 펴보지도 못한 채 황무지가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궁이 개량, 입산 금지 등 특단의 조치를 시행하며 나무 심기에 전념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심고 가꾼 나무가 자라 이제는 ‘금수강산(錦繡江山)’의 지위를 회복했다.
마을 뒷산은 우리 모두의 정원이 되었고, 백 세 건강의 쉼터가 되었다. 등산로에 황토를 깔아 맨발 길도 만들었다.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 보호”의 구호가 현실이 되어 자손만대가 그 혜택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나무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룬 가족이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한 동지들이다.
그런데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나무를 심은 사람도 심긴 나무들도 팔순을 훌쩍 넘겼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가로수들이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고, 휘황찬란한 야간 조명에 잠을 못 잔다. 겨울철에 뿌리는 염화칼슘의 피해로 병이 나고 아프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 못하는 나무들을 위해 2018년 정부가 나섰다.
나무를 돌보기 위해 ‘나무 의사’ 제도를 도입하고 나무병원도 세웠다. 전국에 나무병원이 983곳, 나무 의사가 약 1700여 명이 활동한다. 나무 의사 왕진 가방에는 토양 분석기·엽록소 측정기가 들어있고, ‘수목 치료 기술자’가 동행한다.
의사가 진찰하고 진단하면 수목 치료 기술자가 썩은 부위를 긁어내고 살균제를 도포한다. 지난해부터 생활권 수목 관리에도 나무 의사 진단이 의무화되었다. 아파트와 학교, 지자체, 공장 등의 수목 관리를 돕는다. 폭우·폭염이 반복되는 여름철 관리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이제 자격 없는 조경회사 직원이 나무를 고치는 일은 산림 보호법 위반이다. 아파트 등 생활권 수목에 농약을 뿌리려면 나무병원 ‘처방전’이 있어야 한다. 처방전에 따라 농약을 뿌려야 한다. 심고 가꾸고 돌보는 종합관리 시대가되었다. 숲이나 나무 농장에서 자란 나무를 도심에 옮겨 심을 때 ‘이식 몸살’을 앓지 않도록 ‘뿌리 돌림의 나무 학교’ 과정을 운영한다.
사람들이 밟아 딱딱해지는 도심 토양에 적응하도록 ‘훈련목(木)’ 과정도 거친다. 나무를 옮겨 심었다가 필요한 곳에 식재하는 ‘나무공원’과 ‘나무은행’도 있다. 꽃가루 때문에 민원 대상이 된 나무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는 ‘나무 고아원’도 있다.
나무 의사 협회와 협약을 맺고 ‘전담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새로 심는 나무와 이미 자리를 잡은 나무를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일은 우리가 건강해지는 일이다.
한 알의 씨앗을 심는 사람, 묘목을 정성껏 가꾸는 사람, 묘목을 옮겨 심는 사람. 가지치기와 병충해를 예방하는 사람, 수령을 다 할 때까지 돌보는 나무 의사와 치료사들이 원팀으로 나무를 가꾸는 시대이다. 나무가 주는 혜택은 한두 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 사계절 아낌없이 선물을 주는 나무에게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그늘이 되고, 쉼터가 되어야 한다. 씨앗 하나가 거목이 되는 생명의 신비를 통해 진정한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병든 나무를 돌보는 나무 의사들처럼 사람 돌보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 천년 사는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만년 사는 학을 불러오는 꿈을 심는 ‘오늘’이 각자의 ‘식목일’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정성껏 심는 우리는 파주시대의 희망을 잇는 금수강산의 수호자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