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대

<탐방>-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 대제

“저 웅장한 기와 궁궐은 도대체 무엇일까?”

입력 2026.10.23 16:21수정 2026.10.23 16:21파주시대 기자61

고려통일대전 앞에서 제20회 고려통일대전 대제의 전통 제례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 - 1년에 단 하루 열리는 고려의 궁궐… 천년의 역사가 시민을 만나다

  • - 시민의 발길과 이야기로 채워지는 열린 역사.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때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볼 때마다 저 웅장한 기와 건물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늘 궁금했어요. 파주시대 신문에서 고려통일대전 기사를 읽고 오늘은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왔습니다.”

지난 10월 15일 오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자리한 고려통일대전. 평소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종중 후손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만난 파주시 문발동 주민 정연주 씨의 얼굴에는 오랫동안 품어온 궁금증을 풀었다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정 씨는 평소 고려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특히 왕권 강화를 위해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던 광종과 국가통치 체제를 정비한 성종, 고려 말 격동기의 우왕과 창왕에 이르기까지 고려 왕조의 흥망성쇠에 깊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

“광종은 피의 군주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던 인물이고, 성종은 고려의 국가체제를 정비한 왕이잖아요. 우왕과 창왕처럼 고려 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왕들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그런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습니다.”

그는 정전 앞에 서서 한동안 건물의 지붕과 기둥을 찬찬히 살펴봤다. “고려시대 목조 건축양식에 맞춰 지어진 건물이 이렇게 웅장할 줄 몰랐어요.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을 왜 일 년에 하루밖에 볼 수 없는지 아쉬워요. 하루빨리 시민들에게 상시 개방됐으면 좋겠습니다.”

저곳은 무슨 건물일까? 왜 평소에는 들어갈 수 없을까? 일부에서는 종교시설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지만, 이곳은 고려 왕조의 역대 제왕과 충신·공신을 기리고 민족의 화합과 평화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건립된 역사적 제향 공간이다.

바로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이다. 그리고 이날, 오랜 세월 시민들에게 낯설었던 그 공간이 제20회 고려통일대전 대제를 맞아 문을 활짝 열었다.

■천년의 시간을 건너온 제례… 고려 왕조의 정신을 기리다

2026년 10월 15일 오전 11시.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고려통일대전 경내에 취타대의 힘찬 연주가 울려 퍼졌다.

파주실버취타대의 공연으로 시작된 제20회 고려통일대전 대제는 고려 태조 왕건을 비롯한 역대 왕과 충신·공신의 덕업을 추모하고 민족의 화합과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전통 제례 행사다.

파주실버취타대가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입장하고 있다.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취타대의 연주에 맞춰 헌관과 제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사단법인 고려역사선양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종중 대표와 후손, 지역 기관·단체 관계자, 시민들이 참석해 고려의 역사를 되새겼다.

행사의 절정은 정전에서 진행된 전통 제례였다. 집례의 홀기에 따라 헌관과 제관들이 엄숙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례는 영신례, 신관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철변두, 송신, 망요례의 아홉 순서로 진행됐다.

각 절차에는 조상의 혼을 맞이하고 술잔을 올리며 제향을 마친 뒤 신을 보내드리는 전통 의례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날 초헌관은 이진옥 인천이씨 대총회 회장, 아헌관은 이종춘 경기도의원, 종헌관은 정헌식 파주문화원 부원장이 맡았다.

집례는 우관제 고려역사선양회 전례위원장(전 파주문화원장)이, 대축은 정호진 교하향교 향유회장이 담당했다. 제례에 참여하는 제관과 집사 등의 역할을 정해 기록한 분정기에는 모두 49명의 이름이 올랐다.

정전 안에 봉안된 역대 고려 왕과 충신·공신을 향해 정중히 예를 올리는 헌관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선조들의 공덕을 기리고 전통을 계승하려는 정성이 담겨 있었다.

고려 태조 신성대왕(왕건)의 어진과 위패 앞에서 헌관이 술잔을 올리고 있다.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이날 행사에는 최병갑 파주시 부시장을 비롯해 다수의 경기도의원, 파주시의원 및 지역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종중 관계자와 대종회장, 후손들 역시 자리를 함께하며 고려 왕조의 역사와 선조들의 발자취를 되새겼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평소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고려통일대전을 직접 보기 위해 찾아온 일반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태조 왕건에서 공양왕까지… 정전에 깃든 고려 500년의 역사

고려통일대전은 단순한 전통 건축물이 아니다. 고려 왕조 약 50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시대를 이끌었던 제왕과 충신·공신의 덕업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조성된 제향 시설이다.

약 1만 2,485평에 이르는 부지에는 정전과 영정각, 제전각, 전사청, 내삼문, 서문 등 전통 목조건축물이 배치돼 있다. 시설 전체의 명칭은 고려통일대전이지만, 중심 건물인 정전에는 ‘고려대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정전 내부는 고려 왕조의 역사를 한눈에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다.

고려대전 내부의 모습, 이곳은 일 년에 한 번 고려통일대전 대제에서 볼 수 있다.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정중앙 가장 높은 곳에는 고려 제1대 태조 왕건의 어진과 위패가 봉안돼 있다. 그 아래에는 제2대 혜종부터 제34대 공양왕까지 역대 왕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태조 왕건을 포함하면 모두 34위다.

왕건은 918년 고려를 건국하고 936년 후삼국 통일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가 세운 고려는 약 500년 동안 존속하며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이뤘다. 고려청자와 팔만대장경, 금속활자, 고려불화 등은 오늘날까지도 고려 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정전에는 역대 왕뿐 아니라 고려 왕조에 공헌한 충신과 공신 250위의 위패도 좌우로 나뉘어 함께 봉안돼 있다. 이들의 위패는 정전 내부 양측 제단에 목·화·토·금·수의 오행 원리에 따라 배치돼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위패 제작에 얽힌 지역의 인연이다. 정전에 봉안된 위패는 파주시 법원읍에 거주하는 신현두 어르신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 왕조의 역사를 기리는 공간에 지역 주민의 손길까지 더해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시민이 던진 질문… “이렇게 좋은 곳을 왜 하루만 볼 수 있나요?”

이날 제20회 고려통일대전 대제에서 확인된 것은 고려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종중 후손들의 정성만이 아니었다. 평소 쉽게 들어올 수 없었던 공간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시민들의 관심 또한 분명했다. 문발동 주민 정연주 씨의 이야기는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신문 기사를 읽고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현장을 찾았다는 그의 발걸음은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이 시민과 만나는 과정에서 지역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정 씨는 고려 왕조의 역사에 관한 관심을 이야기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시설의 상시 개방에 대한 바람을 거듭 전했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있다는 걸 더 많은 시민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고려의 역사도 배우고, 아름다운 건축물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일반에 개방됐으면 합니다.”

고려통일대전이 시민들에게 더욱 친숙한 공간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전통 목조건축물의 보존과 제향 공간으로서의 엄숙함을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존과 활용이 반드시 서로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관람 동선과 안전시설, 전문관리 인력, 운영 프로그램을 갖춘다면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민들이 역사와 문화를 누리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영정각에 모셔진 고려 왕조에 공헌한 충신과 공신들의 초상화와 자료. 관람객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명익 객원기자

특히 고려통일대전은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을 관람하는 장소가 아니라, 고려 왕조의 역사와 후삼국 통일의 의미,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 민족의 화합과 평화통일이라는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이야기들이 시민과 청소년들에게 전달될 때 비로소 이 공간의 가치는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천년 전 고려의 통일정신, 오늘의 파주에서 다시 묻다

고려는 후삼국의 분열을 극복하고 새로운 통일왕조를 세웠다. 그 과정에는 치열한 전쟁과 정치적 갈등이 있었지만, 동시에 다양한 세력을 포용하고 새로운 국가 질서를 구축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고려통일대전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다.

제20회 고려통일대전 대제가 열린 이날, 정전에서는 역대 왕과 충신·공신을 기리는 전통 제례가 이어졌고, 경내에서는 시민들이 고려의 건축과 역사를 가까이에서 만났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종중 후손들에게는 선조들의 덕업을 추모하는 자리였으며, 시민들에게는 그동안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역사 공간의 실체를 확인하는 뜻깊은 기회였다. 하지만 하루 동안 열린 문이 다시 닫힌다는 현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고려통일대전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더 많은 시민이 공유하기 위해서는 이제 새로운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려역사관 건립과 단계적 개방을 추진하려는 고려역사선양회의 구상이 파주시와 관계 기관의 협력 속에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천년 전, 고려가 추구했던 통합의 역사와 오늘날 우리가 염원하는 평화통일은 시대적 상황과 과제는 다르지만, 분열을 넘어 화합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파주 통일동산에 자리하고 있다.

천년의 역사를 품은 고려통일대전. 이제는 시민의 발길과 이야기로 채워지는 열린 역사.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때다.

파
파주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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