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위원 황덕순
고든 맥도날드는 “우리 중 누구도 노년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며, 과거에 성취할 수 있었음에도 결국 해 내지 못 한 일로 후회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 말을 곰곰이 음미해보면 평생 배울 밑천을 마련해줄 책임을 통감한다.
천성적으로 배움을 싫어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어른들이 감당하지 못하거나 배움의 기회를 제한할 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Tell me. I am forget.” “말로만 가르치셔요. 그러면 저는 그 모든 것을 즉시 잊어버립니다.”
제발 말로만 하지 마세요, 어렸을 때 그렇게 듣기 싫어하던 잔소리를 지금 저에게 쏟아 놓고 계시잖아요. 고장 난 라디오처럼 어제 한 이야기를 오늘 하고 내일 또 하고....그러면 저는 아주 쉽게 잊어버리면 됩니다.
“Show me. I am memory.” “보여만 주지 마세요, 그러면 나는 기억만 할 거예요.”그림도 보여주고 시범도 보여주면 저는 기억은 할 거예요.
“Involved me. I am understand.” “나를 포함시켜주세요. 그러면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거예요.” “배우는 사람은 저예요.” “제가 배우는 방법으로 배울 수 있게 저와 놀아주고,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러면 저는 가르쳐주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새로운 것을 늘 배울 수 있어요.”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목적은 배움의 기초를 충실하게 갖춰 무한 가능성의 시대에 자신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의 재능이나 잠재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희망 세대‘를 기르는 것이다.
1학년을 다섯 번 다니면 몇 학년일까요? 초·중·고등학생을 구분하지 말고 1학년을 세 번이나 다섯 번 다니면 몇 학년일까?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아이가 3학년 교실에도 있고, 3학년 수준의 학생이 6학년 교실에도 있고, 초등학생 수준의 학생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실에 있다. 어디선가 막힌 부분이 뚫려지지 않고 풀어지지 않은 상태로 매년 학년과 진급을 학고 학교 진학을 한 결과이다.
학년 수준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채 학년 앞만 보고 달려가는 학교라는 열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식 교육 vs 계단식 교육
“막힌 곳을 뚫어주세요”라고 폭염 발령보다 더 간정한 경고음이 쉼 없이 발령되는데 우리는 듣지 못하고 있다.
‘배움의 경보’는 갓 입학한 학생의 표정이나 눈빛에서 읽을 수 있다. 엄마·아빠나 선생님은 개학한 교실에서 진급을 한 다른 학년에서 그리고 진학을 한 다른 급의 학교에서 쉬지 않고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뒤처지지 않게”라는 마음으로, 황무지를 갈아엎는 심정으로, 아니 한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게 열어주는 멘토로서 우리아이 살리는 비결인 Feed-Back을 실현해내야 할 때이다.
나선형으로 된 아파트 계단을 한 계단씩 순서를 밟아 올라가야 원하는 층에 도달할 수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과정은 아파트 계단을 한 계단씩 오르는 것과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교육은 어린이 비만을 만들고 동매경화로 이어져 고혈압으로 험한 세상을 살아갈 배움의 근육을 기를 수 없다.
한 계단씩 차근차근 올라가면서 현재의 기초실력(기초체력)이 몇 학년(몇 층)에서 막혔는지 찾아내는 것처럼 ‘막힌 부분’을 알아내려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거슬러 올라가면서 ‘막힌 부분을 찾아 뚫어내면 문제가 해결된다.
현재 부진하다고 미래까지 부진하라는 법이 없고 현재의 약점이 평생의 걸림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아이 살리는 Feed-Back 사례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할 때 ‘부진아 캠프’를 희망하는 학교에 예산을 배정하고 함께 협력하여 단 한명이라도 뒤쳐진 아이를 남겨놓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일할 때 배운 사례이다.
부진아 캠프를 희망하는 학교와 담당자 명단을 살펴보다가 한 학교에서 그 해 발령을 받은 신규교사를 캠프 담당자로 지정한 것을 보고 현장을 살피러 갔다.
교감 선생님을 만나 아직 교수 방법이 서툰 선생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생기발랄하고 의욕이 넘치는 그 선생님 자원하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자원했다는 말에 더 이상 추궁하기가 어려워 선생님을 만나 위로하려고 캠프장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부진아 캠프가 아니라 놀이터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노는 모습이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학생인지 구분이 안 갔다. 놀이에 집중하느라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라고 생각하며 쉬는 시간에 면담을 하는 순간 그 선생님은 신규교사가 아니라 캠프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진정한 ‘멘토’였다. 과거 선배 선생님들이나 부모들의 저지른 잘못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한 사람의 일생을 살려내는 ‘Feed-Back의 자기주도 학습’을 실천하고 있었다.
“막힌 곳을 찾아내고 뚫어주면 돼서” 저도 신나고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말에 우리 교육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허둥지둥 감사의 말을 전하고 그날 배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일’이 바로 나의 교육관이 되었다.
선생님! ‘제가 아는 것은 이것이고’, ‘저는 이 부분을 몰라요’라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막힌 곳이 시원하게 뚫리는 메타인지의 실천 장’이었다. “각 학생들의 자신의 막힌 부분을 야기하기 까지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다.
첫째, 아주 친밀해지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모른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막힌 곳을 찾아내는 첫 단계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둘째, 어린이들이 자기 고백을 할 때 까지 실컷 놀아주고 간식도 먹고, 밥도 함께 먹는다고 했다.
그러면 한 아이가 슬그머니 다다와 묻는다고 한다. “선생님 공부는 안 해요?” 이때가 되도록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기다리는 그 선생님이 ‘멘토’였다. “그래, 공부하고 싶구나, 어떤 공부를 할까?”, “선생님 저는 받아쓰기를 할 때 받침 있는 건 잘 몰라요”,“선생님 저는 두 자리 더하기를 잘 못해요” 등등 자기의 막힌 곳을 이야기 한단다.
선생님은 그 아이와 함께 그 막힌 부분으로 돌아가서 살짝만 건드려주면 막힌 담이 무너지고 답답한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어 ‘유레카’를 외치게 된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속은 깊은 물속 같을지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 사람 마음속의 생각을 우물물을 퍼내 듯 길러낼 수 있다”는 잠언이 떠올랐다.
자신의 수준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게 함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막힌 부분을 뚫는 비결이었다.
“Tell me. I am forget.” “Show me. I am memory.” “Involved me. I am understand.”
우리아이 살리는 비결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게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실컷 놀아주어야 막힌 곳을 찾아낼 수 있고, “우리 아이들 중 누구도 노년에 이르러 과거에 성취할 수 있었음에도 해 내지 못 한 일로 후회하게 만들지 않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