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덕순 칼럼위원
예년과 다르게 최고 온도를 연일 갱신하는 폭염의 날씨 속에서 다행인 것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젖먹이 아기부터 유치원생과 초·중·고등학생 모두가 방학 중 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을 해봤지만 방학이 생각처럼 여유를 가지고 쉴 수 있거나 평안하지만은 않다.
무더위를 피해 피서를 떠나보지만 길이 막히고 사람에 치고 바가지요금과 치솟는 물가에 짜증만 더하며 어디를 가든 피할 수 없는 폭염과 열대야 때문에 별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게방학이다.
방학은 학교에 가지 않는 자녀들과 가정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 학부모들의 입장과 가정환경과 부모님들의 성향에 따라 그 수준이 다양하다.
학기 중 만족할 만한 성적표를 받아보지 못한 학부모님들은 방학 중 보충학습을 시켜야겠다고 별렀을 것이다. 그런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님이 제시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학교 밖의 또 다른 학교에 다녀야 하는 ‘방학 중의 학교’에 등교를 강요당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는 부모님들은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려고 좋은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가정들도 있을 것이다.
맞벌이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어딘가에 맡기거나 또 다른 교육기관에라도 위탁함으로 마음에 평안을 얻으려는 학부모님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계획도 없는 가정에서는 삼시세끼 식사는 물론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수시로 요구하는 간식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다양한 요구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부모님들도 있을 것이다.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 무더위도 이겨내야 하지만 자녀들과 날마다 전쟁처럼 치루는 일상의 다양한 요구에 스트레스를 받아 방학하는 순간부터 개학을 기다리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미치기 전에 하는 게 방학이고, 엄마가 미치기 전에 하는 게 개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모든 아이는 배우는 방법이 다르다.
나는 이 방학을 선생님도 학부모들도 특히 성적으로 고통을 받는 부진한 학생들을 생각하며 방학을 잘 활용하여 꼭 회복해야 할 과제를 한 가지 제안 한다.
방학은 단기간 쉼을 얻지만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개학과 동시에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개학 이후의 교실 상황과 자녀들이 겪어야 할 막힌 문제에 대해 대비를 하는 가정은 드문 것 같다.
방학을 마치고 개학날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방학 전의 아이들이 아니다. 키도 자라고 몸집도 크게 자라서 온다. 학교 밖에서 다양한 세상 경험으로 말하거나 생각하는 수준 또한 훌쩍 자라서 온다. 그런 면에서 방학은 꼭 필요한 쉼과 성장의 기회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학습능력의 제자리걸음으로 인하여 수업이 시작되면 ‘막힌 부분들’ 앞을 가로막아 학교 생활이 답답해진다.
제대로 배우고 싶지 않은 학생은 한 명도 없다. 배우기 싫은 것이 아니라 배우려고 해도 어디서 막혔는지 풀리지 않는 문제로 배울 수 없으므로 고통을 받는다. 외적인 상장에 비해 내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성적부진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여기서 한 가지만 세밀하게 생각을 해보자. 모든 학생들은 배우는 방법이 똑 같을까?
언어발달 수준이나 이해 능력이나 사전 학습기회가 다 다른데 한 가지 방법으로 가르치면 다 이해하고 학년 수준에 다 도달할 수 있을까?
같은 부모를 둔 형제자매도 성격이나 타고난 재능에 따라 배우는 방법이 다르다.
‘학습 부진아’는 없다. 모든 학생들은 배우는 방법이 다른데 가르치는 방법을 모르는 어른들이 자기만 아는 방법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배우는 학생이 제대로 배우지 못해 ‘부진아’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배우는 방법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학교 현장을 떠난 전직 교사가 반성문을 쓰는 기분으로 학교 현장을 의미 있게 돌아보게 된 계기는 이제 막 말을 배우느라 발음은 서툴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 갓 세 살이 된 손녀딸을 통해서였다.
어느 날 세 살짜리 손녀딸이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리듬과 신나는 율동이 펼쳐지는데 늘 흉내를 내던 아기가 “엄마 소리가 안나!”라고 이야기 하면서 따라하지 않는 것을 봤다. 왜 그런가 하고 프로그램을 살펴보았더니 우리 귀에는 익숙한 리듬이고 늘 보던 율동이었지만 노랫말이 우리말 가사가 아니라 영어노래가 나왔다.
영어노래를 모른다. 노랫말을 모르니 음악 소리가 소음으로 들린다. 음악 소리와 가사가 안 들리니 율동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순간 아기는 배우는 즐거움을 잃는다.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엄마니까 “엄마 소리가 안나니 도와 주세요“라고 말을 하지만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말이 외국어처럼 들려도 말을 못한다.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데도 ”선생님 말씀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요“라고 질문하지 못한다. ”혹시 나만 모르는 것은 아닐까?“,”그것도 모르느냐?“고 친구들이 흉볼까봐 몰라도 아는 척하면서 학년 진급만 한 아이들이 다른 학년에서 ’부진아‘라는 낙인이 찍힌다.
나는 어떤 부모이고 어떤 교사일까?
인도처럼 언어가 복잡하고 다양한 나라도 드물다, 이웃 동네에 가면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계급마다 언어가 다르다. 그렇게 다양한 언어에도 불구하고 요가 수련법이 세계로 전파되어 우리나라에도 요가학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요가 수련원에서 학생을 훈련시킬 때 코치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에게 배우러 온 학생의 학습 방식을 알아내는 일이다.
학생의 배우는 방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학생에게 알맞은 코치인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자신의 요가 수련법 학생의 배우는 방식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다른 코치를 소개시켜 준다.
훌륭한 코치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학습자의 학습 방법에 맞출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교육을 한다. 별 볼일 없는 코치는 찾아오는 학생 모두를 받아드리기는 하는데 학생이 온전한 배움의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은 떨어진다.
Feed-Back, 우리아이 살리는 비결
훌륭한 코치는 먼저 배움이나 기술을 익힐 그릇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는 가르치는 자의 최고 기술이어야 한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어른 때문에 생기발랄하고 건강하게 배움의 기쁨을 누려야 할 우리의 귀한 아이들이 ‘학습부진아’라는 오명을 쓰고 고통을 받고 있다면 이 방학을 이용하여 그 부진을 해소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하자고 제안한다.
우리 아이가 어느 과목 어느 학년의 수준에서 막혔는지를 알아내자. 그리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내면 개학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막힌 곳이 뚫리면” 배움이 즐겁고 수업 시간이 기다려질 것이다.
방학은 Feed-Back으로 “막힌 곳을 뚫을 수 있는 우리 아이 살리는 절호의 기회이다.
수십 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Feed-Back은 막힌 곳을 시원하게 뚫는 터닝 포인트이다.
무더위는 에어컨과 선풍기나 피서로 이겨낼 수 있고 계절이 바뀌면 해결 되지만 답답한 머릿속이 열을 받으면 삶 자체가 황무지가 됨으로 막힌 곳을 지금 뚫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