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글도 펜도 종이도 없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기원전 1,750년 경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함무라비법전을 거대한 돌에 새겼다. 5,000여 년 전 인류 최초로 문자를 발명한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설형문자(쐐기문자)를 점토판에 기록했다. 책의 모습을 갖춘 최초의 발명품이었다.
이집트에서는 상형문자를 파피루스에 기록하다가 파피루스보다 질기고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양피지를 만들었다. 양피지는 부드럽고 질긴 장점이 있지만 한 권의 책을 만들려면 양 10~15마리가 필요했다. 보관할 때 돌돌 말아두고 읽을 때 펴서 읽었는데 오래 두면 딱딱하게 굳어 다시 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종이를 발명하기 전 2,000여 년 동안 대나무를 쪼개 역은 죽간을 썼다. 한자 ‘冊(책)’자는 대나무를 끈으로 엮은 죽간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죽간에 붓으로 글을 쓰고 틀리면 칼로 긁어내어 만든 책을 의미한다.
심혈을 기울여 쓴 한 글자를 고치기 위해 칼로 긁어내는 과정은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가다듬고 바르고 정확하게 기록해야 할 사명으로 되새겼을 것이다.
칼과 붓이 함께 만들어내는 기록의 역사에 도필(刀筆)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왕조시대 과거급제 관원을 돕는 실무자들을 ‘도필리(刀筆吏)’라고 불렀다.
중국이나 조선에서 도필리(刀筆吏)들은 주로 형벌(刑罰)과 소송(訴訟)을 다루는 권력자를 보좌했던 참모 그룹이다. 도필리들은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했지만 문자를 익힌자들로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관리로 서리(書吏), 부사(府史)라고도 불렀다.
부드러운 붓으로 쓴 글자를 긁어내고 고치는 칼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메스와 같다. 있는 증거를 긁어내고 없는 증거를 새겨넣는 악덕 도필리(刀筆吏)들의 칼은 흉기였다.
청나라에서는 도필리들의 무소불위의 행패로 국가 기강이 흔들릴 정도였고, 조선의 남명 조식은 “군민의 정치와 나라의 여러 사무가 모두 도필리의 손에서 나온다. 이들은 대가를 주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안으로 재산을 모으면서 밖으로 백성들을 흩뜨려 열에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도필리가 기록한 정확한 증거 ‘한 글자’가 생명과 재신을 보호한 반면, 이권과 결탁하여 남모르게 고친 ‘한 글자’로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악덕 벼슬아치와 한통속 된 도필리들이 증거를 날조하여 우매한 백성들을 울렸다. 현재 공산국가인 중국 공산당도 당을 보좌하는 사법체계 안에서 이 도필리(刀筆吏)들의 부활을 경계한다니 우리도 정신 바짝 차리고 현실을 살펴야 할 때이다.
과거에 급제한 정식 관원을 벼슬아치, 벼슬아치들이 선발한 하급 관리들을 ‘구실아치’라고 불렀다. 벼슬아치들의 수족과 같은 ‘구실아치’의 ‘구실’의 뜻에서 백성들의 삶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구실’은 관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 정당하게 거두어들일 온갖 세납 사무를 통틀어 이르던 말이다.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홍역을 이르는 말이기도 했다. ‘벼슬아치’와 ‘구실아치’들의 구실에 따라 백성들의 삶이 좌지우지되는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다.
왕조시대가 지나고 자유 문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도필리(刀筆吏)들의 역할이 사회정의를 수호하는 ‘법관’의 역할로 발전하였다. 이 세상에서 놀라고 감탄할 일은 사람의 재능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나날이 교묘해지는 범죄자들을 법과 양심에 따라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수술 집도의가 법관들이다. 그런데 극히 일부이겠지만 벼슬아치와 짜고 치는 악덕 도필리(刀筆吏)들이 있다.
일부 언론과 편파방송, 특권을 가진 선량들 중 일부가 악덕 도필리(刀筆吏)들과 함께 나라의 기강을 흔들고 있다. 현명한 시민들은 벼슬아치와 작당하여 부정과 부패로 국가를 병들게 하는 악덕 도필리들과 부화뇌동도 가짜 뉴스에 속아서도 안 된다.
자유민주국가인 우리는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3심제도를 두고 대법원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준수한다. 3심 법원 위의 독립기관 헌법재판소는 ‘위헌법률 심판’, ‘헌법소원 심판’ ‘정당해산 심판’ ‘대통령탄핵 심판’을 한다.
법률에 능통하고 최고의 지성과 고매한 인격을 갖춘 분들로 법과 양심,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결하는 도필리의 후예들이 헌법재판관들이다.
생사여탈권을 가진 황제 앞에서도 그 직을 걸고 법률과 증거로 억울한 백성을 보호하던 포청천의 추상과 같은 판결과 현명한 도필리의 모델인 공손선생 같은 분들이다.
권력에 아부하고 누구 편에 서는 순간 정의는 사라지고 법꾸라지가 된다는 교훈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사는 분들이다.
나라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평생 헌신하고 퇴역하신 분이 “군인의 수의는 군복”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법관의 수의는 법복’이고 공무원들의 수의는 ‘근무복’이며 국민들의 수의 또한 ‘일상복’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에 새겼다.
어느 편에 서 있다면? 재판을 미루거나 안 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면? 법 정의를 훼손한다면? 나무라는 국민을 법관을 협박한다고 항변한다면? 초등학생도 아는 법질서와 현명한 국민들을 우롱하는 악덕 도필리일 뿐이다.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든 정의의 여신이 지켜보고 있다. 어떤 도필리(刀筆吏)가 되는지 낱낱이 기록되고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고작 100년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웅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가르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정직한 도필리(刀筆吏)인가, 아니면 법꾸라지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시민들을 향하여 “정치에 무관심한 가장 큰 벌은 가장 저질스런 인간들에게 지배받는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문자, 사진, 영상으로 정밀하게 기록되고 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기록문화를 선도하고, 세계 최고의 한글로 정의롭고 바른 역사를 기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