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너무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참기름은 참깨를, 들기름은 들깨를 압착해서 짜낸 기름이다.맛을 보았을 때는 들기름이 더 고소하나 향으로 따지면 참기름이 훨씬 더 고소한 향이 난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참깨로 만든 참기름이 훨씬 더 좋은 기름이었다.아마도 깨 앞에 붙는 ‘참’자와 ‘들’자의 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사전을 찾아보면 부사로 쓰이는 '참’은 ‘사실이나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과연’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들장미나 들짐승 같이 주로 거친 느낌으로 쓰이는 ‘들’에 비해 어딘가 좀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던 것 같다.
요리에 쓰일 때 참기름과 들기름의 용도는 확연히 다르다고 하지만 요리에 문외한인 나는 그 용도와 관계없이 기름이 들어가야 할 음식에는 언제부터인가 참기름이 아닌 들기름을 찾게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언제라고 그 시점을 딱 짚어서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시기가 아니라 계기로 생각해보자면 아마도 감정의 선이 변했던 어떤 때였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에는 화려하고 세련된 걸 좋아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 투박하면서 수수한 느낌을 좋아하게 되었다.입는 옷과 먹는 음식을 포함한 모든 생활환경이 그렇게 바뀌게 된 그 시작이 아마도 입맛의 변화였던 것 같다. 화려한 양념 맛이나 요리 또는 조리가 편리한 인스턴트식품 보다는 수고롭지만 식재료 고유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나물이나 구운 김과 전을 즐겨 먹게 되면서 생긴 변화이다.
나물을 무치거나 김을 구을 때나 전을 부칠 때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기름이 들기름이다.그러니까 들기름 특유의 고소한 맛에 흠뻑 빠져들면서 감정의 선이 바뀌게 되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소담스러운 참깨 꽃에 비해 아주 작은 들깨 꽃의 모양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한참 들깨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이다.들깨 꽃의 존재는 눈으로 보기 전에 냄새로 먼저 알게 된다.
들깨 특유의 고소한 냄새에 끌려 관심을 가지고 보니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들깨 꽃이 눈처럼 내리고 있었고 떠오르는 태양빛을 맞으며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덜 화려하거나 덜 세련되었다는 생각조차 편견이었다.뭐든 그렇다.관심을 가져야 제대로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그리고 제대로 보아야 진가를 알 수 있다.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그러니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볼 일이다.참된 값어치를 찾을 일이다.들깨 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