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덕담을 주고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새해가 온다.
12월 31일 자정부터 1월 1을 맞는 찰나의 순간만큼은 5천만 국민과 80억 지구촌 가족들의 소망은 하나가 된다.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가족의 평안과 건강과 개인의 꿈과 나라의 안정과 세계평화를 소망한다. 새해에는 모든 일이 좋은 꿈처럼 이루어지기를 빌며 각자의 장소에서 송구영신(送舊迎新)하자.
경건하게 새해맞이를 하고 일상으로 돌아와 새 달력을 펴 놓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명의 진수를 발견할 수 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아야 할 내용이 빼곡하다. 허투루 살날이 단 하루도 없는 달력은 ‘나·너·우리’의 생명 교과서이다.
잠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조공국가였던 조선은 독자적인 달력을 가질 수 없었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국의 오만은 조공국가의 독자적인 달력 제작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혜로운 세종 대왕은 시헌력, 태양력이라는 이름을 안 쓰고 조선의 달력을 만든다.
겉으로 보면 학문 책, 내용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드셨다. 해와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운행을 중심으로 만든 ‘칠정산 내외편’이다.
조선은 농본주의 국가였지만 중국 화북지방(베이징, 허베이 내몽고 자치주)을 기준으로 한 농서밖에 없었다. 남의 나라 달력에 맞춰 농사를 지으니 계절에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1429년에 농사직설을 편찬하고 사계절을 24절기로 구분하여 농자천하지대본의 생존전략을 수립하였다. 그런데 한문으로 쓴 농사직설을 제대로 읽고 적용할 농민은 없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더 지혜롭게, 어리석은 사람도 지혜롭게 만들기 위한 한글을 창제하여 1446년에 반포했다. 4계절에 맞는 달력은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린 생명줄이었다.
문자의 독립과 시간의 독립을 위해 해시계 물시계를 제작하고 세계최초의 측우기도 만들어 치산치수에 힘썼다.
우리는 독자적인 표준시각을 가진 독립국이다. 우리 기상 위성이 실시간으로 날씨 정보를 제공하는 첨단과학의 나라이다. 스마트폰에 1인 1 달력을 가진 문명국가이다.
달력 안의 빨간 글씨의 날들은 삶의 활력을 주고, 작은 글씨로 기록된 의미심장한 내용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안내하는 나침반이다.
“환희의 인간”이라는 책을 쓴 크리스티앙 보뱅은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리고 그 문을 여는 것이다.”라고 했다. ‘달력에 기록된 숫자 외의 문자들’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미지’의 문을 열고 소망하는 꿈을 이룰 희망 메시지들이다.
2025년 새 달력 안의 의미심장한 희망 메시지를 살펴보자. 설과 추석, 가정의 달 5월의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부부의 날은 어른의 아버지인 어린이는 국가의 미래이고, 어버이는 생명 릴레이의 근본이다.
앞선 세대들 모두가 스승이다. 부부공경의 아름다운 삶은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최고의 본이고 가정과 국가 목표이다.
호국보훈의 달과 현충일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애국심을 되새김하는 날이다. 제헌절과 광복절은 식민 통치를 벗고 자유대한민국이 탄생한 독립을 회복한 날이다.
국경일과 기념일이 있는 달력에 가족들의 생일과 제삿날, 결혼기념일과 자녀들의 결혼식과 출산 예정일, 각자의 신분과 직업에 맞는 일정과 약속 날짜를 추가하면 ‘나의 달력’이 된다.
1초로 시작하는 시간은 우리를 소망하는 곳으로 옮겨주는 생명의 안내자이다. ‘오늘’ 태어난 아기도, 열 살 된 소년도, 90살이 된 어르신도 같은 시간을 선물로 받는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은 다르지만 ‘오늘’이라는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 모든 생명체가 맞이하는 ‘오늘’은 아무도 살아보지 않은 새날이고 첫날이다.
매일 공평하게 생명 통장에 똑같은 시간이 입금된다. 초를 다투는 사람에게는 8만6400초, 분 단위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1440분, 시간 단위로 담대하게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진다.
달력의 시간(時間) 속에서 각자가 사용하는 고유한 언어(말과 글)는 그 사람을 원하는 곳으로 안내하고 각자의 꿈과 교환할 수 있는 소망 Ticket이다.
달력 밖의 날을 살 수 없다. 건너뛰거나 바꿀 수도 없다. 생략할 수 있는 날도 없다. ‘오늘’이 입금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달력 속의 날을 살 수 없다. 감사하게도 달력에는 우리의 사망 날은 없다.
미움 시기 질투 원망 탓 폭력 사기 가짜뉴스 등 불행의 날도 없다. 달력에 없는 고통과 분열과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은 같은 달력을 사용하는 나라에서 함께 살 자격을 상실한 환자들이다.
365일은 누군가가 만들어 제공하는 달력 속의 날들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친구와 국민들의 삶을 조금씩 나아지게 만드는 희망 설계도이다.
오늘은 무슨 날일까? 새 생명이 태어나는 날,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날, ‘나와 너와 우리’ 사이가 더 좋아지는 날이다. 그동안 달력에서 읽어보지 않고 지나쳐온 소중한 날들을 살펴보면 누군가가 ‘나와 너와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우리가 달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희망 메시지는 암 예방의 날, 세계 물의 날, 도서관의 날, 책의 날, 시(詩)의 날, 국민안전의 날, 유권자의 날, 바다식목일, 입양의 날, 식품 안전의 날, 희귀질환 극복의 날, 바다의 날, 푸른 하늘의 날, 토양의 날, 노인학대 예방의 날, 자살 예방의 날, 치매 극복의 날, 임산부의 날, 정신건강의 날, 세계식량의 날, 문화의 날 등 생명을 살리고 안전한 삶을 돕는 날들이 빼곡하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새해에는 달력 속의 하루하루를 생명의 유실수를 심고 가꾸는 농부의 일기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