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감각기관인 귀의 신경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약해지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나이와 비례하여 점점 더 줄어든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들어도 귀의 신경이 가장 온전한 어린아이만큼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슬픈 일이다.아픈 얘기다.
그렇다. 경우에 따라서는 슬프고 아플 수도 있겠다만 그렇다고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일이 무조건 다 슬프거나 아픈 것만은 아니다.어린아이들의 총명한 귀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나이가 들어 청력이 약해졌을 때 비로소 들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마음으로 듣는 소리다.그렇게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건 결코 슬프거나 아픈 얘기일 수 없다.
농로를 따라 걷다보면 코스모스가 병풍처럼 둘러선 낡은 의자를 만나게 된다.어린아이들은 결코 앉지 않는 의자다.그 의자를 찾는 사람들은 걸음걸이가 힘들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작은 텃밭을 찾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다.
그 분들은 그 낡은 의자에 앉아 코스모스의 노래를 듣는다.그 분들이 코스모스의 노래를 듣고 있다는 걸 아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가늘고 길게 뜬 그 분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코스모스의 흔들거림에 맞추는 그 분들의 작고 바스락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다.
가끔 그 낡은 의자에 앉아본다.코스모스의 노래가 아직은 선명하게 들리지는 않는다.하지만 점점 눈이 가늘고 길어지는 걸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듣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슬픈 일이냐고요? 아픈 얘기냐고요?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코스모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게 결코 슬프거나 아픈 일이면 안된다.마음의 귀를 얻었다는 건 이제 곧 마음의 눈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