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요즘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들 중에 ‘고마리’라는 꽃이 있는데
‘고만이’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고만이의 ‘고’는 가장자리 또는 모서리를 뜻하고, ‘만’은 심마니,
똘마니와 같이 사람을 일컫는 ‘만이’와 같은 의미다.
그러니까 ‘고’와 ‘만’의 합성어인 고만이가 변한 고마리는
‘가장자리에 사는 놈들’이라는 뜻을 가진 꽃이다.
그렇다면 가장자리는 도대체 어디의 가장자리를 지칭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논이나 밭에 물을 대거나 빼기 위해 만든 좁은 통로인 고랑과 이어지는
물길을 ‘물꼬’ 또는 ‘고’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고마리는 바로 이 ‘고’의 가장자리에 사는 ‘만이’들인 것이다.
논과 밭을 쉽게 접하기 어려워진 세상이 된 후로 이제는 흔히 사용하지 않는
‘물꼬’나 ‘고’와 같은 단어는 거의 외국어나 다름없게 되었다.
도시화가 지금처럼 진행되기 전에는 산과 들에 지천이었을
고만이들은 그렇게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너무 흔했기 때문일까?
고마리는 다른 꽃들 다 가진 변변한 전설 하나 가지지 못한 꽃이다.
가진 이야기라고는 고작 이름에 대한 설이다.
꽃들의 크기가 고만고만하다고 해서 고마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거나,
물을 정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이 고마워서 고마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전부다.
예년에 비해 강수량이 많지 않았던 올해는 물이 흔했던 계곡이나 고랑과
이어지는 물꼬에 물이 적어졌지만 그럼에도 산의 비탈을 타고 흐르는
작은 물줄기 가장자리로 고만이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그 소박한 아름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곱다.
저렇게 아름다운 고마리들을 못 보고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보고 살았는지 후회스러웠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고마리들은 고작 얼마 되지 않는 물을 정화시키기 위해 피어났을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이 시대의 고만이들은 물이 아니라 혼탁해진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고 믿고 싶었다.
코로나로 고통 받는 세상을 구하여 자신의 전설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 피어났다고 믿고 싶었다.
고마리를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습관이 생겼다.
인사말은 언제나 같다.
“고만이들아! 세상을 부탁해!”
‘흔하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잊지 마세요.
화려한 성공을 쫓기보다는 주변을 돌아보는 따뜻함을 잊지 마세요.’
내 인사를 받은 고마리가 답으로 세상을 향해 던진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