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삽을 들거나 지게를 어깨에 둘러맨 모습이다.
아마도 어릴 적 보았던 외삼촌들의 모습이 머릿속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의 농부들에게 지게와 낫과 삽은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이제는 가축들에게 줄 꼴이나 땔감으로 쓸 솔잎들로 가득 채워진 지게를 둘러맨 농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삽을 든 농부가 논둑을 거니는 모습은 아직도 간간히 눈에 띈다.
아궁이는 보일러로 대체되어 더 이상 땔감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가축들은 꼴이나 여물 대신 사료를 먹이게 되었으며, 무거운 짐은 트랙터나 트럭으로 옮기면 되었으니, 지게는 이제 그 효용과 쓸모를 잃게 되었지만 논에 물을 대거나 빼는 일은 자동화된 개폐문이 아니라 여전히 농부가 삽으로 물꼬를 트거나 메워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삽을 들고 논을 살피는 농부를 볼 때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론을 날려 볍씨와 살충제를 뿌리고, 휴대폰으로 개폐문을 조절하여 논에 물을 채우거나 빼고, 콤바인으로 벼를 베는 건 물론 탈곡에 부대에까지 담아내고, 방앗간이 아니라 마트의 도정기에서 도정된 쌀로 지은 밥을 먹는 다는 건, 그저 배만 채우는 식사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도래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 논을 찾는 농부의 발길로 키운 곡식으로 배를 채우고, 그래서 여전히 농부의 정성이 담긴 곡식으로 감성을 채울 수 있는 건, 삽을 든 농부 덕분이다.
농부는 오늘도 삽을 들고 논둑을 걷다 허리를 숙여 논을 살피곤 한다. 꼭 내 마음을 보듬어주는 느낌이다.모내기를 끝낸 파주의 농부가 우리들에게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