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21세기 최첨단 문명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이 일상 자극보다 더 강한 인위적 자극을 주면 더 강하게 반응하는 수렵·채집 시기에 형성된 뇌 상태로 살고 있다고 한다.
1950~60년대 동물학자 니코 틴베르헌은 과장된 자극이 주어지면 더 강하게 반응하는 ‘고정 행동 패턴’이 있음을 알아냈다. 갈매기의 생태를 관찰하다가 어미 갈매기의 노란 부리 끝에 붉은 점을 주목했다.
새끼 갈매기가 어미 갈매기의 붉은 점을 쪼아대면 물어 온 먹이를 토해 먹인다. 붉은 점은 새끼들이 먹이를 달라고 두드리는 주문처였다. 틴베르헌은 어미 갈매기의 부리를 길게 만들고, 붉은 점을 더 크고 선명하게 제시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긴 부리와 훨씬 선명한 붉은 점을 새긴 모형 갈매기를 제시했더니 실제 어미는 본 체도 안 하고 모형의 붉은 점을 필사적으로 쪼아댔다. 어미 갈매기들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해 초대형 가짜 알을 둥지에 넣고 관찰을 했다. 어미 갈매기도 진짜 알은 외면하고 가짜 알에 집착했다.
갈매기들의 행태를 통하여 동물들은 실제 자극보다 과장된 자극이 주어지면 더 강하게 반응하는 ‘고정 행동 패턴’이 있음을 알아냈다. 동물에게 있는 극강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기는 ‘초정상(超正常) 자극’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우리는 눈만 뜨면 TV와 핸드폰을 통해 최고로 매력적인 초정상 자극들과 마주한다. 모든 부족을 다 뒤져도 구경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은 매력에 마음을 빼앗겨 외모 지상주의와 성형 중독에 빠진다.
틴베르헌은 진짜와 가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강렬한 시청각 자극을 극복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무엇인가 잡으려고 손을 내밀다가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고정 행동 패턴’ 의식을 깨고 각자의 꿈을 이룰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는 희망 메시지이다.
영장류 학자 프린스 드발은 침팬지와 보보노 같은 영장류들의 치열한 싸움 뒤의 화해 행동을 발견했다. 서열 정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운 후 상대방에게 다가가 털을 고르고 포옹하고 키스도 한다. 스킨십으로 관계를 회복하고 적극적인 화해로 집단의 평화를 유지한다.
세대 간, 남녀 간, 진영 간, 연인 간, 가족 간에도 극단의 양극화의 길을 걷고 있는 혼란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귀담아들을 이야기이다.
바름을 분별하는 지혜, 옳음을 실천하는 용기, 옳고 바른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인내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회복해야 한다. 보다 넓고, 보다 깊고, 보다 멀리 바라보는 안목으로 상생과 화합의 지혜를 실천해야 한다.
시인 김수열은 “살아야 할 아름다운 삶”을 권한다. “산이 살아있고, 바다가 살아있고, 사람이 살아있는/숨쉬는 모든 것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그런 곳이 되기를 열망한다고 노래한다. 생명이 약동하는 들에 나가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이 줄지어 기다린다. 양지도 음지도 선택권이 없는 존재인 식물들이다.
씨가 떨어진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아야 하는 천형(天刑·하늘로부터 받은 벌)의 존재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물들의 생존 전략은 놀랍고 신비로 가득하여 배워야 할 생명의 지혜가 차고 넘친다.
식물들은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벌과 나비, 곤충과 파리 등을 불러 모은다. 한 곳에 뿌리박고 살면서 비바람과 눈보라 타는 가뭄과 혹한을 견뎌야 하고, 태풍과 홍수는 물론 봄철의 산불까지도 이겨내며 생명을 이어간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벌과 나비와 곤충은 물론 사람까지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지혜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꽃의 수술과 암술의 기기묘묘한 모양과 특수한 구조는 벌, 나비, 나방, 곤충들을 위한 맞춤형이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색깔과 독특한 향과 영양 만점의 꿀을 공들여 만드는 이유도 서비스 전략이다.
아름다움을 먼저 제공하고 향기로 안내한다. 초대받은 자들이 꿀을 마음껏 먹고 마음껏 싸가도록 종합서비스를 한다. 씨를 퍼뜨리기 위해 벌과 나비와 곤충과 새와 동물들의 행동특성을 면밀하게 관찰한 맞춤 서비스이다.
한 번에 활짝 피는 꽃축제는 멀리서도 찾을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이다. 수많은 세월 동안 벌과 나비와 곤충들의 행동특성을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이다.
이 봄에 한 수 배워보자. 식물들이 벌과 나비와 곤충과 동물과 사람과 심지어 해충까지도 먹여 살리는 상생과 화합의 지혜를 겸손하게 배우자. 나·너·우리가 삼시 세끼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식량은 식물과 동물의 먹이 사슬을 통하여 우리 식탁에 오른 것들이다. 사람들은 식물과 동물질과 가공식품들을 요리 할 뿐이다.
인류생존의 비밀은 산소와 식량을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삶의 터전을 둘러싼 식물들 덕분이다. 식물들은 벌과 나비와 곤충과 새와 바람과 비와 눈과 해가 한 팀이 되어 지구 생명체에게 생명의 양식을 제공하여 지구촌을 보존하는 특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도 그 드림팀에 합류하여 이 혼란한 시대를 지혜롭게 넘겨가야 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와 문명을 누리는 우리는 더나은 ‘오늘’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게 감사하고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한다.
“어린나무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바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봄바람은 겨울잠에서 깬 나무들이 삼투압만으로 힘겨워 할 때 나무를 흔들어 가지 끝까지 물오름을 돕는다니 놀라운 봄의 힘이다.
조너선 하이트는 “바람은 나무를 휘게도 하지만 나무의 세포들은 압력을 견뎌 더 단단해지고, 뿌리는 더 깊어진다. 약간의 스트레스가 면역력과 저항력을 높인다는 안티프래질 이론을 주장했다.
생명이 약동하는 이 새 ‘오늘’을 진짜 새롭게, 오늘을 새롭게 또 새롭게의 구일신(苟日新)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의 삶을 적용하자. 자연으로 나가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지혜를 배워 겸손하게 삶의 바른길을 정립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