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옛날 노아의 대홍수 때 온 천지에 물이 차오르자 모두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민들레만은 발이 빠지지 않아 도망을 가지 못했다. 사나운 물결이 목까지 차오자 민들레는 두려움에 떨다가 그만 머리가 하얗게 다 세어 버렸다.
민들레는 마지막으로 구원의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은 그런 민들레를 가엾게 여겨 그 씨앗을 바람에 날려 멀리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피어나게 해주었습니다. 민들레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까지도 얼굴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민들레에 대한 전설이다.
노아의 대홍수 시대를 헤쳐 나온 민들레가 근래 들어 최대의 수난을 겪고 있다.
민들레 뿌리가 몸에 좋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빈 봉투와 과도 하나 달랑 들고 다니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보이는 족족 민들레를 캐내고 있다.
어쩌면 민들레에게는 노아의 대홍수 때보다 요즘이 더 큰 위기일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
회사 앞 화단에 피어있는 민들레 한 송이를 만났다.
작년 겨울의 초입에 마지막 민들레를 보았던 자리이다.
햇볕이 오랫동안 머무는 가장 양지 바른 곳이기에 해마다 가장 빨리 찾아와 가장 오랫동안 머무는 민들레의 보금자리가 되었는가 본다.
흔히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다니는 사람을 교만한 자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므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세우고 있는 민들레는 자칫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민들레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며 사는 것이라고 한다.
외양보다는 마음이 중요하고, 눈에 보이는 모습을 보기 보다는 품고 있는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마음이 중요하다.
제 한 몸 희생하여 세상 구석구석까지 진실을 알리겠다는 마음.
그 진실을 지키는 일에 기꺼이 제 한 몸 바치겠다는 마음.
민들레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보는 게 중요하다.
강원도는 물론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산불이 겨우겨우 진정되었다.
불바다가 된 현장에서 제 한 몸의 안위보다는 강풍을 타고 번지는 불길을 막느라 사투를 벌였던 소방공무원들의 헌신 덕분이다.
그을음으로 시커멓게 변한 그들의 지친 얼굴에서 저는 민들레를 떠올렸다.
사나운 불길 앞에서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을 그들은 어쩌면 간절한 기도를 하늘에 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그런 간절함 덕분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들의 헌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 보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교만으로 세운 고개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으로 보는 하늘이다.
하늘에 대한 감사이며 화마를 온 몸으로 막아낸 영웅들에 대한 감사이다.
앞으로도 어렵지 않게 민들레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민들레를 보면서 이 시대를 지켜나가는 숨은 영웅들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자리는 햇볕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는 양지바른 자리였으면 좋겠다.
민들레와 닮은 감사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