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평생 처음 겪는 무더위를 물러가게 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위대한 질서에 새삼 감탄을 한다.
일 년에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은 날이 두 번 있다는 사실을 초등학생 때 배웠지만 24절기 중 하나로만 알았지 생명의 질서임을 깨닫지 못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은 날인 춘분은 봄을 데려오고, 추분은 가을을 데려와 사람살기 딱 좋은 기온을 선물한다.
사람들의 마음과 인간관계와 삶의 질도, 정치판의 질서도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을 데려오듯 살맛나는 변화가 일어나면 참 좋겠다. 날선 비판과 비난이 봄 눈 녹듯 사라지고, 미워하고 탓하고 짜증내고 화내며 다투는 사이가 하룻밤 사이에 춘·추분 축제로 변하는 희망의 날을 꼭 보고 싶다.
중국의 지혜로운 정치가 관중은 “정치를 하면서 재앙이 될 일도 복이 되게 하고, 실패할 일도 돌이켜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해(利害)를 분별하고 득실(得失)을 재는 데 신중했다. 우리의 앞선 세대들은 춘분이 데려오는 봄바람처럼, 추분이 불러온 결실의 가을바람처럼 자연의 순리를 따른 선각자들이었다.
오늘의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사색의 계절에 겉모습은 어른이고 대범한 척 하는데 속 좁은 나를 돌아보던 중 “인생은 가을 같이 짧으면서도 형형색색이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그 문장을 따라가며 숱한 세월 우리를 살린 4계절의 특징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 했다. “겨울은 동판화(etching), 봄은 수채화(watercolor painting)로 표현한다. 수채화는 종이 발명 이후에 확산된 기법인데 얼음이 녹으며 활기를 찾는 생명의 봄을 수채화로 표현하니 눈이 맑아진다.
유화는 본래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계면활성제를 넣어 섞이게 하는 기법이란다. 산과 들과 바다와 사람이 하나 되는 활기찬 여름을 유화로 표현하니 절묘하다.
수를 놓은 듯 고운 들판과 알록달록 잘 익어가는 가을은 잘 어우러진 한판의 모자이크(mosaic)라는 표현에서 “인생은 가을 같이 짧으면서도 형형색색이다”라는 답을 발견한다.
거기에 더하여 먹거리, 볼거리가 풍성한 가을의 백미는 단연 단풍구경이다. 단풍구경의 영어표현은 ‘leaf peeping’인데 ‘peep’은 살짝 ‘엿보다’의 뜻이다. 화려한 단풍잎 사이로 각자의 삶을 살짝 엿보고 삶의 지혜를 깨달으라고 귀띔을 한다.
힌트에 힘입어 일상으로 눈을 돌리면 꽃 축제, 먹거리 축제, 특산물 축제, 동문체육대회, 학교 운동회 등 대한민국의 가을은 천고마비의 축제 현장이다. 천고마비의 문자그대로의 뜻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풍요로운 추수의 계절이지만 그 안에 담긴 교훈은 수확물을 빼앗아가는 흉노족 경계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교훈을 깨달으라는 듯 “북한이 쓰레기 풍선(추정)을 부양 중에 있음. 도민들께서는 낙하 물에 주의하시고, 발견 시 접촉하지 마시고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바랍니다”라는 보안 문자가 떴다. 축제의 계절에 찬물을 끼얹는 집단 짓이다.
집계에 의하면 북에서 날려 보낸 오물풍선이 5500여개로 약 9700톤에 이른단다. 로이터통신에 의하면 제주도와 전라도 일부를 제외한 남한 전 지역에 떨어졌단다.
이런 상황이면 ’접경지역 주민 보호 명목으로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신속 제정한 분들이 오물투척 방지법을 만들 법 한데 아직 조용하다. 인권을 생명처럼 여기는 분들이 지금은 묵언수행중인지 사색중인지 조용하다.
이 좋은 계절에 누구 탓할 생각은 없고 사람 살리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오물풍선의 화답으로 사람 살리는 오색풍선을 보내면 좋겠다. 남아도는 쌀, 옷, 양말, 방한모자와 장갑도 보내자. 장마당에 통하는 달러와 영양제도 보내고 초코파이도 보내자.
우리 노래와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공개처형 한다니 민둥산뿐인 북한 주민들에게 고운 단풍 동영상과 꽃 축제 사진들을 보내자. 알록달록한 오색풍선은 보는 즐거움, 받는 기쁨, 먹는 즐거움과 월동 걱정도 덜어줄 수 있으니 일석 몇 조가 될 것 같다.
오색풍선을 띄워 장마당을 풍성하게 만들면 수해로 줄어든 배급을 대신할 수 있고 주린 배를 조금이나마 채울 것 같다. 다만 저들이 더럽고 추한 오물을 보내는 속내는 알아내야 한다. 천고마비의 교훈을 잊지 않으면서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는 오색 풍선으로 화답을 하자.
동토의 겨울도 춘분이 데려온 봄을 이기지 못한다. 참을 수 없는 폭염도 추분이 데려온 가을을 거부하지 못한다, 계절풍에 실려 보내는 오색풍선에 춘분의 온기와 추분의 시원함을 담아 희망을 잃은 동토에 살 희망과 자유의 새 바람을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