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골프장 캐디 자살 사건, 직장갑질 맞지만 법 적용 안돼… “근로자 아니라서”

입력 : 2021-02-21 21:49:31
수정 : 2021-02-21 22:10:19

국민의힘 이효숙 파주시의원이 지난해 9월 27일 동생 죽음에 대해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언니 배00씨의 사연을 듣고 있다. 사진/김영중 기자

출처/직장갑질119 제공

캡틴(캐디 관리자) 폭언·모욕·비하… 유족, 회사에 신고했지만 나몰라라
현행법 골프장 관리자 등 특수관계인 적용×… 산재보험도 적용 제외

[파주시대 김영중 기자]= 고용노동부가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가 직장갑질로 자살한 사건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의 직법적인 적용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본보 9월 28일 '죽음으로 이어진 골프장 캐디의 안타까운 사연' 홈페이지 게재>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양지청은 파주 관내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고인의 유족에게 2월 9일 공문을 보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사용자에게 사건에 대한 조사와 조치, 실태조사 등을 권고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본보의 최초 기사 게재 이후 파주시의회, 시민단체 성명서 발표, 청와대 민원, 유족 집회 등이 이어졌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용역, 하청, 도급, 파견, 특수고용 등 갑질에 더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다. 

21일 직장갑질119(집행위원장 오진호)와 고인 배00씨 유족, 본보의 기사를 종합해 보면, 경기보조원(캐디) 고 배00씨(27세, 이하 배씨)는 2019년 7월 20일 파주시 법원읍에 있는 K골프장에 입사해 가해자인 캡틴의 지속적인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 

캡틴(S씨)은 100여명의 캐디를 지휘하는 책임자이고, 배씨를 비롯한 캐디들은 손님에게 수고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골프장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특수고용직으로 일했다. 

캡틴은 무전을 통해 100여명의 캐디들에게 업무를 지시했다. 캡틴은 배씨에게 무전을 통해 “느리다, 뛰어라”,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배00 너 때문에 뒷사람들 전부 다 망쳤다”, “니가 코스 다 말아먹었다” 등 공개적으로 모욕과 망신을 주었으며, 업무를 마치고 경기과로 불러 질책했다고 밝혔다.

배씨가 해명하면 “어디서 말대답이냐”고 호통을 쳤습. 캡틴은 구내식당에서 배식중인 배문희씨에게 “야 너 살 뺀다면서 그렇게 밥 먹냐, 그렇게 먹으니깐 살찌는 거야”라는 등 외모비하를 일삼았다. 

배씨는 8월 16일 쓴 일기에서 “또 다시 주눅 들었다. 다른 회사로 옮겨야 하나 수없이 고민이 된 날이다. 자존감이라는 게 왜 존재하는 걸까 나를 너무 괴롭히는 거 같아 괴롭다. 캡틴은 내가 상처받는 거에 대해 생각 안 하고 나만 보면 물어뜯으려고 안달인 거 같아”라고 썼다. 8월 23일 배씨는 면도칼로 손목을 자해하고, 목을 매는 등 자살시도를 했다. 

이어 8월 28일 캡틴은 또 다시 배씨에게 진행이 느리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질책했고, 경기과 직원(정규직)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역시 정규직인 경기과 팀장도 그녀에게 “니가 깡패야?”라고 모욕했다. 큰 충격을 받은 배씨는 캡틴이 운영자로 캐디들이 가입해 경기 일정을 통보받는 다음 카페에 캡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배씨는 “오늘 캡틴 기분 좋더라? 웬일이지? 오늘 캡틴 기분 별로인거 같은데 괜히 건드리지 말자. 이게 저희 대화내용이에요. 아셨어요?”라며 “출근해서 제발 사람들 괴롭히지 마세요. 그리고 같은 상황에서 무전도 차별화해서 하지 마요. 저 재입사 받아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이렇게 저를 밑바닥까지 망가뜨려주신 건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남겼다. 
    
그런데 글이 20분 만에 삭제된 뒤 그녀는 카페에서 강퇴를 당했다. 카페 강퇴는 경기 배치를 받지 못하게 하는 사실상의 해고였다. 다음날 배씨는 어머니와 울면서 전화해 캡틴에게 당한 직장갑질을 알렸다. 

배씨는 9월 7일 저수지에 몸을 던지는 자살시도를 했다. 더 이상 골프장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배씨는 9월 14일 기숙사에서 짐을 싸서 함께 사는 친구에게 가기로 했다. 그런데 캡틴이 혼자 짐을 싸고 있는 기숙사를 방문해 둘이서 대화를 하게 됐고, 두 사람의 대화 이후 배씨는 함께 사는 친구에게 혼자 가겠다는 마지막 통보를 남기고 모텔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특히, 배씨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지만 회사는 가족에게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고, 조의도 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고인의 가족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사연을 올리고, 직장갑질119에 제보하고, 골프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시작하자, 사측의 한 관계자는 고인의 언니를 찾아가 영업 방해를 중단하라며 압박했다고 밝혔다. 

배씨 유가족을 만난 회사는 고인의 죽음을 “회사와 연관 짓지 말라”고 했고,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 개인 간의 갈등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이에 10월 5일 고인의 가족은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고, 지난 2월 9일 고용노동부는 ‘사건처리결과 회신’을 보내왔다. 

고용노동부는 공문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관련규정의 직접적이니 적용이 곤란”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사용자에게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적절한 조치,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조사 등을 권고하고, 직장 내 괴롭힘 재발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을 위해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체계구축 및 이를 반영한 취업규칙 개정 및 신고하도록 시정지시 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배씨를 노동자가 아니라고 단정한 이상, 회사가 조사를 하지 않아도, 가해자인 캡틴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아도 현행법상 정부가 이를 제재할 방법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처럼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특수고용노동자를 지휘·명령하는 사실상의 사용자뿐만 아니라 사장 친인척, 원청회사, 아파트 주민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고, 처벌조항도 없다. 

뿐만 아니라 고인은 회사의 요구로 산재보험 적용 신청 제외 신청서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산재신청도 어려운 상황이다. 

동생의 억울한 입장을 알린 고인의 언니 배문주씨는 “결과는 만족할만큼 나오진 않았지만 고용노동부의 공문을 통해 인정된 부분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송옥주 의원은 △가해자가 사용자 또는 사용자 친인척일 경우 과태료 1000만 원 △의무사항 불이행 과태료 500만 원의 처벌조항을 발의했다. 2월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 2월 25일 환노위 전체회의를 거쳐 26일 본회의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pajusida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