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절박한 마음이야 말로 이미 달이다

입력 : 2024-08-27 19:09:46
수정 : 2024-08-27 19:15:29

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요즘 만나는 달맞이꽃들은 얼마나 키가 큰지 흡사 다 자란 키다리나물꽃을 보는 느낌이다.

작지 않은 내 키를 훌쩍 넘어서는 달맞이꽃들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을 정도로 그들이 한껏 목을 치켜세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한달쯤 남은 한가위 대보름달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추정해본다.달과 가까워진다는 건 달맞이꽃들이게는 숙명과도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숙명을 일깨우는 달빛은 밤마다 그들 위로 흩뿌려진다.우주만유의 일체(一切)를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그 힘에 순응하기 위해 달맞이꽃들은 날마다 밤을 새워가며 까치발을 섰을 것이다.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인도와 농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농로를 잇는 아주 오래된 돌계단이 있다.농부들도 요즘엔 차량이나 오토바이로 논과 밭을 오가기 때문에 운동이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 외엔 이용자가 매우드문 계단이다.돌계단과 돌계단이 이어지는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달맞이꽃 한 송이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 키가 윗계단을 넘어서지 못한다. 운명의 달맞이꽃이다.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계단이라 할지라도,만약 다른 달맞이꽃들처럼 훌쩍 키를 키웠더라면 필시 사람들의 거친 손길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돌계단 달맞이꽃이라고 숙명을 모를 리는 없지만,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돌계단 달맞이꽃은 숙명에 대한 순응보다는 운명의 개척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달맞이꽃들이 조금이라도 더 키를 키우기 위해 달을 향한 노력으로 밤을 지새울 때,돌계단 달맞이꽃은 조금이라도 더 키를 낮추기 위해 달과 멀어지려 밤을 밝힌다.그럼 달맞이꽃이 아니지 않냐고?결코 그렇지 않다.

달을 보며 달과 멀어진다는 건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을 달을 마음에 새기는 작업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어쩌면 절박한 그 마음이야 말로 이미 달일지도 모른다.숙명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건,운명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건,달을 마음에 품는 일인지도 모른다.

외롭고 힘들고 괴로운 일이지만,온몸으로 달을 맞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돌계단 운명의 달맞이꽃은 오늘도 밤을 지새우며 스스로를 낮출 것이다.순응의 까치발을 기꺼이 접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