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읍 초리골마을회(이장 우민제)가 1968년 1.21사태 50주년을 맞아 우씨 형제와 김신조 목사<사진> 초청 간담회를 갖고 안보의식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9일 법원읍 법원4리 초리연에서는 김신조 목사를 비롯한 우씨 4형제 막내 우성제씨, 송달용 전 시장, 윤병렬 읍장, 성삼수 파주시청 관광과장, 안보단체 관계자, 유관기관 단체장 등 70여 명이 자리를 함께한 가운데 ‘1.21사태 50주년 김신조 목사·우성제님과 함께하는 좌담회’가 열렸다.
1.21사태는 1968년 1월19일 나무장사로 끼니를 연명하던 20대 초반의 우씨 4형제가 삼봉산으로 나무를 베기 위해 올라갔다가 무장공비에게 잡혀 있다가 풀려난 사건으로, 당시 무장공비 김신조를 비롯 31명의 124 북한군이 임진강 철책을 뚫고 천현면(당시) 1번지인 삼봉산을 거쳐 청와대까지 진격했다가 총격전에서 29명이 몰살, 1명이 투항(김신조), 1명은 월북한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국가안보가 바뀌고 공고히 다지는 한편, 예비군이 창설돼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좌담회를 가진 19일은 앞서 17일 밤 10시경 미군과 군인이 지키고 있던 철책을 뚫고 19일 낮 2시경 법원읍 초리골 삼봉산이 둘러싸고 있는 기슭에서 4형제가 공비를 만나 붙잡혀 억류돼 있다 밤에 풀려난 날이다.
이날 우씨 형제의 자손인 민제씨는 경과보고에서 “무장공비에게 붙잡혀 억류돼 있다 풀려난 아버지 형제는 여러기관에 신고를 했으나 믿어주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먹었던 20여점의 미숫가루를 증거로 찾아내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 마침내 공비를 소탕하게 됐다”라고 회상하며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오늘 이 자리가 다시한번 안보의식을 상기시키는 시간을 갖고자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김신조 목사(76)는 “당시 우씨 형제를 죽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라의 운명이 바뀌었을 것”이라며 “그 중심에 무장공비를 신고한 우씨 형제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란 나라는 정권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휴전 이후 2700회 도발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며 “이들이 대한민국의 애국자이다. 안보는 논쟁꺼리가 아니고 목숨이다. 자유수호다. 북한을 다시 생각해야 하며 안보는 반드시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기 바란다”며 현실을 직시해야한다고 밝혔다.
우성제씨도 “오늘 이 자리는 50년전을 회상하며 안보의식이 부족한 이때 안보의식과 안보태세를 더욱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좌담회는 초리골마을회가 주관, 법원읍 재향군인회·상가번영회, 파주성락교회, 법원읍 기독교연합회 후원으로 진행됐다.
김영중 기자 stjun01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