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국수 전문 포장마차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파주시의 명물 “언칼국수” 우상미 대표
-고생하며 벌은 돈이지만 일정 수익 사회에 환원... “기부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싶다”
“상미야 너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 세월 아둥바둥은 아니지만 김밥 한줄 먹고 3~4시간 쪽잠 자며 힘들게 살아온 생활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
젊은 청춘을 서민들의 음식인 국수와 함께한 지금은 파주시의 명물이 된 언칼국수 우상미 대표의 초심을 잊지 않으려는 그의 다짐이다.<사진>
20년전 파주시 금촌동 일방통행로에서 포장마차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우 대표에게 개인적인 좌우명이나 사업 경영이념이 무엇이냐고 질물을 던졌더니 단순하게 ‘착한 마음’이라며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만큼 우 대표의 마음은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고생하며 사업에 성공했지만 사람의 심성이 변하지 않았기에 지금에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국수의 맛을 낼 때도 어린시절 할머니가 만들어줬던 그 맛을 손님 테이블에 내어 놓는다. 소박함과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이 담긴 맛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챙겨야 했기에 꽃다운 청춘을 40도가 넘는 주방에서 국수 뽑듯 그렇게 땀을 흘려가며 앞만 보고 살아온 그녀는 6년전 국제봉사단체인 라이온스클럽 활동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상과 마주했다.
돈은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여유로웠지만 마음만은 늘 허기가 져있던 그에게 ‘봉사’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된다.
우 대표의 프로필은 현재 10여개의 시 단위의 단체와 기관에서의 굵직한 이력까지 사회활동이 왕성하지만 뭐 좀 있다고 허세가 아닌 봉사와 기부문화 활동에 집중돼 있어 통이 큰 ‘여장부’라는 애칭이 뒤따른다.
라이온스클럽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매월 미용봉사, 어르신 가정 방문 식사대접 및 복지시설 대청소 등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회원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는 우상미 언칼국수 대표를 만나 가게 운영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 봉사활동 등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국수종류만 하는 포장마차로 시작해 ‘언칼국수(얼큰칼국수)’라는 상호로 유명한 가게로 성업중이다. 자수성가를 했다는 평이다. 계기를 말해달라.
20여년전 금촌동 일방통행로 농협 옆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해 10여년전부터 시작한 언칼국수까지 22년째 하고 있다. 청소년기시절 꿈은 미술가였다. 그림 그리는데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관심과 재능이 있어 미술학도가 꿈이였지만 집안 형편상 아버지와 함께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사업 초기 아버지가 급성폐결핵 병환으로 누워 계셔 병원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또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장사에 몰두했다.
■ 서민들의 대표적인 음식인 오로지 칼국수 하나로 성공을 했는데 특별한 맛의 비결은 어디에 있나?
맛의 비결이다 비법 보다는 옛날식으로 조미료 넣지 않고 우리 어머니, 할머니가 해주시는 것처럼 똑같이 그 느낌과 마음으로 한 것 뿐이지 특별한 재료라는 건 없다. 보통 시골에서 칼국수에 호박 넣고 멸치 넣고 다대기(장) 풀어서 한 것이 전부이고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국수를 만들어 내고 있다.
■ 언칼국수 사업장이 안정가도에 올라있고 운영이 잘되고 있는데 그래도 사업을 하다 보면 역경도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20살부터 포장마차로 시작했다. 동생이 있고 아버지의 긴 투병생활 때문에 시작했는데 젊은 나로서도 하고 싶은 일은 있었으나 포기하고 8년여동안 길거리 포장마차 장사해 벌은 돈을 동생이 사업을 한다고 했지만 사기를 당해 큰 돈을 변제해줬다.
설상가상 아버지가 병마와 교통사고로 많은 병원비 발생으로 열심히 일만 했다. 잠 덜 자고 덜 먹고 번돈을 모두 잃고 다시 시작한 것이 지금의 언칼국수이다.
당시 일방통행로 공사로 영업을 할 수 없게 됐고 이후 모자라는 사업자금은 융통해서 힘들게 시작했다. 언칼국수 영업 개시 3년만에 자리를 잡았다.
잠은 보통 네 시간 정도 잤다. 새벽 다섯시에 영업이 끝나면 집에 들어가서 설거지하고 또 그날 영업 준비하고...그렇게 2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같이 하던 동생이 고양시에 사업장을 독립해 현재는 밤 10까지만 영업을 하고 있다.
■ 봉사활동 계기와 개인적으로 하는 봉사활동이나 후원하는 곳이 있다면?
코스모스라이온스클럽 박희준 초대회장(현 시의원)으로부터 입회 권유를 받아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국제봉사단체인 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면서 “봉사라는 것이 이런거구나” 매료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같은 국제봉사단체인 로타리클럽을 소개 받았으나 활동면에서 라이온스클럽이 더 났다는 생각에 국제라이온스협회 제3지역 파주코스모스클럽에 입회한지 6년이 돼서 2년간 회장을 역임하다 6월말 이임했다.
개인적으로는 파주시농아인협회 운영위원과 무궁화장학회, 행복장학회, 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후원하고 있으며 1년에 한번씩 기관이나 단체에 위탁해 일정금액(비교적 큰 금액 임)을 기부하고 있다.
■ 지난 2월 출범한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진행하는 경기나눔리더중 파주시에서는 우 대표가 제1호 ‘나눔리더’에 가입했다. 설명해달라.
나눔리더는 100만원 이상을 약정기부하거나 일시로 기부하는 이들로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캠페인이다.
경기나눔리더는 경기사랑의열매 나눔봉사단과 연계해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모금 캠페인으로 개인이 100만 원 이상 일시 또는 1년 약정으로 기부하면 가입할 수 있고 300만 원을 약정했다.
나눔리더는 지역사회 나눔 문화 확산을 이끌어갈 지역별 나눔 지도자들의 모임으로 개인 기부 프로그램이다.
■ 침체돼 있던 단체를 2년간 회장으로 재임하며 훌륭한 단체로 성장시켰다. 또한 6년의 라이온스클럽 활동을 하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봉사가 왜 좋은가?
회원들과 소통하는데 중점을 두고 회장직에 임했다. 나이는 클럽내에서 막내급이라 언니 같고 엄마 같은 분들이다. 가족같은 마음으로 서로 소통하고 대화를 통해 풀고, 아플 때 아픈 얘기하고 힘든일 있으면 같이 도와주며 그렇게 회원들과 소통했다.
봉사를 마치고나면 즐겁고 뿌듯하다. 세상에 태어난 것이 고맙고 감사하다. 과거 어린 시절에 힘들었던 것들이 봉사를 하며 마음이 다스려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살면서 이런사람 저런사람 다있지만 내가 욕심이 너무 많은게 아닐까? 하는 마음을 깨닫는다. 수익이 생긴 만큼 지역사회에 지속적인 후원 계획은 변함이 없다.
■ 바쁜 가게 일에도 열심히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는데 더 많은 봉사활동을 위해 확대시킬 생각은 있는가?
자원봉사를 더 확대 시킬 생각은 없다. 안한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 기부를 많이 할 생각이다. 지난 6월말까지는 클럽회장이었기 때문에 클럽위주로 치중했으나 현 회장님이 잘 이끌어 가실거라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경고 운영위원으로써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금을 마련해 주고 싶고 어려운 이들과 꼭 필요한 곳에 기부해 기부문화 확산에도 앞장서고 싶다.
■ 사회생활을 하며 인생의 멘토를 만났다고 하는데 그분이 누구이며 우 대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주코스모스라이온스클럽 1부회장직에 있으면서 3년전 만난 국제라이온협회 354-h지구 서재원 전 총재님(2016. 7~2017. 6)이신데 어떤 조언을 해줘서도 아니고 특별히 가르쳐준 것도 없다. 하지만 그 분의 행동과 말에서 ‘큰 사람’이란걸 느꼈다. 인간답고 정의롭고 사랑스러운 그런분이고 인간미가 넘치는 분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면은 멋지면서도 온화한 분인데 사업적으로는 (키가 작아)‘작은거인’이다. 일에 있어서는 냉철하고 정확하고 실수를 하지 않는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철두철미한 분이다. 같은 사업을 하지만 또 다른 모습에서 사업의 마인드를 배우고 있다.
봉사에 있어서도 라이온스 이념을 제대로 보여준 분이다. 지역사회에서 라이온스 활동을 비롯 적십자봉사활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활동 등 통이 큰 기부문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가르쳐 준 인생의 멘토로 기억하고 싶은 분이다.
■ 칼국수 한가지로만 사업에 성공했다. 또 다른 사업 계획이 있는가?
지금도 가게는 잘 되고 영업적으로도 힘든건 없지만 제 꿈은 언칼국수를 저의 명의로 된 10개의 체인점으로 확장 시킬 계획이다. 요즘에는 기본 칼국수에 손님들이 저렴하고 푸짐하게 드실 수 있는 사이드 메뉴 개발에 고심중이다.
분식이 아닌 다른 외식업도 해보고 싶다. 외식업 종류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일식집을 운영해보고 싶다. 향후의 계획은 5~6년은 사회(봉사)활동에 치우쳤는데 앞으로 4~5년은 사업적으로 매진하고 싶다. 그렇다고 봉사를 게을리 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와 겸해서 사업도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 40을 넘긴 중년이 됐다. 아직 미혼이고 결혼이란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인데 계획이 있는가?,
처음부터 어렵게 장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20여년을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다. 가족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점점 가게 운영이 잘되다보니 결혼은 생각도 못했다.
20년 동안 반복된 생활을 하다보니 결혼 생각이나 누구를 만나고 할 겨를이 없엇던 것 같다. 또 여유가 생겼을때는 봉사하고 사회활동하면서 잊고 살아 그렇게 미루다보니 늦어진거 같다. 계획이 있긴 하지만 나이 40이 넘어 인연을 만나려고 하니까 오히려 심사숙고 해졌다.
특히, 남은 인생을 반려자와 살아가야 하는데 20년을 고생해서 쌓아온 길도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같이 공유해야하는데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곧 하겠죠?(웃음)
■ 인터뷰 마무리중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 자신한테 하고 싶어요!”
저 자신한테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상미야 너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 세월 아둥바둥은 아니지만 김밥 한줄 먹고 3~4시간 쪽잠을 자면서 힘들게 살아온 생활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 (생활이)지금은 어느 정도 풍요롭다 보니까 힘들게 살아온 지난 시간을 덜 생각하는 것 같고 사람이 게을러진 것 같다. 과거의 생활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어” 라며...
우상미 대표는 힘들게 살아왔던 세월처럼 그렇게 하진 않겠지만 ‘초심’이란 의미를 다시한번 되세기며 스스로한테 굳은 다짐을 다져본다.
김영중 기자 stjun01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