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疏生)하는 봄이 왔다.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글 판에 ‘봄,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기적’이라는 글귀가 걸렸다. 새 생명의 약동과 가슴 뛰는 감동을 준다. 봄의 기적을 시샘하는 봄 산불이 2026년 1월1일부터 2월 25일까지 157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축구장 약 930개 면적이 재가 되었다. 하루에도 몇 건씩 제공되는 안전문자 홍수 시대에 안전불감증을 점검해야 한다.
안전문자를 받는 사람은 ‘119’를 누르지 않아도 되는 안전지대에 있다. 수신된 안전문자 이면에는 ‘119’를 누르는 다급하고 간절한 손’이 있다. ‘다급한 그 손’은 누군가가 자신을 반드시 구해 줄 것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 믿음에 반응하여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밥 먹다가도 뛰어나가 분들이 있다. 그분들이 나타나는 현장은 불과 물과 연기와 통곡이 뒤엉킨 절망의 상황이다.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사건·사고 현장에 반드시 나타나는 그분들은 주황색 제복의 영웅(英雄)들이다.
주황색 제복을 입고 37년간 크고 작은 재난현장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퇴임한 조양호 해경청장의 증언을 귀담아 듣자. 우리가 기억하고 안전불감증을 고쳐야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교훈이다.
소방관 출발의 첫 번째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다. 보통 사람은 평생 한 번도 만나지 않는 사지가 떨어진 교통사고였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마주한 현장은 국가동원령이 내려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였다. 자원봉사 개념이 없던 시절 초대형 사건 현장에서 12시간 작업하고 주먹밥 한 덩이로 허기를 면했다.
여름철이라 공터에 비닐을 깔고 눈을 붙였다. 샤워할 곳이 없어 속옷을 찬물에 적셔 입으며 보름을 견뎌냈다. 소방관은 생명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목숨 걸고도 빛이 안 나는 일을 37년 지속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남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책임감’이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주황색 제복’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매년 반복되는 고질병이 봄 산물이다. 봄 산불은 1미터 넘게 쌓인 낙엽 덩어리에 불이 붙은 현장은 전쟁터이다. 불을 머금은 낙엽 덩어리가 강풍에 날아다닌다. 불과 연기와 바람이 일이키는 화마와 싸우며 불을 끄고 이재민을 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1차 전쟁이 끝나고 불길이 잡히면 전소된 집터를 호미로 긁어 유골과 치아 보철이라도 찾는다. 화마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장례를 치르도록 돕는 일이다. 37년 소방관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현장은 무안 항공기 참사였다. 기체에서 쏟아진 기름과 물이 뒤섞인 활주로는 뻘밭이었다.
기체 폭발로 붕괴와 압사가 동시에 일어나 시신이 수백 미터 밖으로 흩어져,유골과 유품을 찾아 드리기 위해 낫으로 풀을 베고 눈밭을 호미로 훑었다.
들짐승과 새를 쫓기 위해 야간에도 불을 밝히며 20일 넘게 현장을 수색하며 마무리를 했다. 불 난 상가에 갇힌 10대 아이들을 구하고, 태풍에 방파제에 고립된 어른신들을 구한 이야기는 끝이 없다.
여섯 명의 소방관이 목숨을 잃은 홍제동 방화 사건 당시만 해도 불에 타지 않는 방화복은 없었다. 생명을 잃은 동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런 불편한 기억 때문에 출동벨이 울릴 때 가슴이 철렁하고 망설여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라고 답한다.
“내가 선택한 소명인데 기꺼이 달려나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소방대원으로 사는 것은 가족의 이해와 희생 없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묵묵히 견뎌준 가족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현장에선 냉철한 책임감으로 버티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심신이 무너진다. 서너 달 불면에 시달리고 3일간 기억을 잃은 대원도 있다. 소방본부에서 심리 상담을 해주지만 퇴직 후 모든 지원이 끊겨 홀로 싸워야 한다.
생명 걸고 생명을 구하는 절박한 상황에도 박봉을 털어 노인복지시설에 후원한 공로로 ‘숨은 의인 선행상’도 받았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불과 물과 연기와 통곡이 뒤엉킨 참화속에서 분투한 시간이었지만 뿌듯하단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은 일로 달려가 보고 싶다며 몇 가지 부탁을 한다. “사람 목숨보다 돈을 우선하는 풍토를 고치자. 위험 징후와 경고에는 반드시 대책을 세우자. 위험 지구에는 주차타워를 만들고, 골목 주정차는 절대 하지 않는 소방안전 시민의식을 기르자.
분초를 다투는 재난에 대비하는 육·해상 통합 위기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측 불허의 대형사고, 신종사고 시대에 유형별 대응 매뉴얼이 꼭 필요하다. 오늘도 시민들의 안전한 하루를 위해 헌신봉사 하는 주황색 제복의 조언을 귀담아 듣자.
시민의식이 변하면 봄 산불 제로, 교통사고 획기적 감소, 가정·학교·연인 간 폭력이 급감했다. 소방관 출동 횟수 급감. 엠블란스 사이렌 소리가 사라졌다는 안전문자를 받는 날이 반드시 온다. ‘봄,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기적’처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파주시민들의 희망 잇기’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