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
(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지난 여름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무더위와 긴 싸움을 했다. 짧은 가을을 밀어내고 찾아온 겨울도 예년의 겨울 날씨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일상도 예측불허의 날씨를 닮아간다. 그럴지라도 연말을 맞이하여 잘 이겨내서 감사하고, 더 잘 견뎌내자고 덕담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면 마음의 따듯해질 것 같다.
이럴 때 현명한 사람들은 역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바른 삶의 길을 찾는다. 당태종 이세민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황제였지만 끈질기게 잘못을 지적하는 위징에게 감사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비춰주는 인경(人境) 즉 사람 거울로 존중했다.
현명한 사람은 혼란할 때 역사의 거울에 ‘자신의 오늘’을 비춰본다. ‘역사는 ‘바른 눈’을 뜨고 ‘옳은 길’을 찾는 사람을 가르치는 회초리이고 내비게이션이다. 지구는 지금 사람들이 무제한 사용한 탄소를 비롯한 화학물질로 온난화되어 몸살을 앓으며 경고를 한다.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고 앞선 세대가 건설한 문명을 파괴한다. 사람을 해치는데 몰두하는 지구촌은 지금 전쟁터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느냐 죽느냐의 전쟁터 같은 상황이다.
전쟁을 벌이는 당사자들은 승리요인을 힘과 권력과 상대를 파괴하는 첨단 무기나 군사력을 꼽는다. 하지만 역사의 거울은 승패의 진짜 변수는 ‘날씨’라고 가르친다. 우리의 일상에서 ‘날씨’는 사람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난제 중 난제이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은 ‘날씨를 아는 사람이다” 날씨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일기예보의 전선(前線)이란 온도와 밀도가 서로 다른 두 공기 덩어리가 만나는 경계면이다. ‘전선(前線)’이라는 용어가 군사용어인 ‘전선(戰線)’에서 나왔다.
중요한 결정의 날 ‘D-day’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나왔다. 1944년 6월 5일 연합군의 기상학자들은 6월 6일 기상상태가 좋아질 것으로 보았고, 독일군은 악천후가 계속될 것으로 판단했다. 정확한 날씨 정보가 2차대전의 승패를 갈랐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건국의 단초가 된 위화도 회군의 명분도 날씨였다. 무더위와 긴 장마에 활의 아교가 녹고 땅이 진창이 되어 보급도 숙영도 작전도 불가했다.
우리나라의 운명을 가른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공로자도 날씨였다. 1950년 9월 15일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갈 때 미군기상관측 장교는 태풍 진행 방향과 반대라 상륙이 가능하다는 제안을 했다. 이 해석에 따라 상륙을 감행하고 태풍이 지나가자 작전을 감행했다. 북한군은 태풍으로 상륙작전이 불가능하다는 오판으로 6.25의 판세가 갈렸다.
전선에서 날씨가 전세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인 것처럼 생활전선은 날씨와 같은‘감정의 충돌’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 기상 상황은 예측은 하지만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절제와 통제와 조절이 가능하다.
‘나’와 ‘너’와 ‘우리’가 더 가까워진 최첨단의 생활전선에서 ‘감정의 날씨’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행복한 삶’의 본질이다. 한때 사람을 위협하는 최대 난제가 ‘암’이였는데 이제는 거의 정복되고 완치된다.
역사 속에서 사람의 최대 실수는 사람을 해치고 두렵게 하는 ‘폭력’을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은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과 소박한 꿈을 파괴하는 ‘최악의 악천후’는 사람이 사람을 해치고 괴롭히는 ‘폭력’이다.
하나뿐인 입으로 맛있는 음식 먹으며 좋은 말 옳은 말 고운말 바른말을 하자. 맑고 고운 눈으로 따뜻하고 기대에 찬 선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온갖 재주를 가진 두 손과 뛰어난 두뇌로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을 만들어 선물하자. 건강한 두 발로 아름다운 관계의 모든 가능성을 연출할 수 있다. 인간만 소유한 무한상상력은 존귀한 자산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무한 가능성의 유산이다.
거친 말과 불편 눈빛, 위협적인 표정과 두려운 감정, 첨단기술로 거짓을 퍼뜨리고, 신체를 무기로 사람을 해치고 위협하는 사람은 이 시대 ‘최악의 질환자’이다.
암 환자, 독감 환자, 코로나 환자들은 자신은 고통스럽지만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가하지 않는데도 질병으로 분류하고 치료해서 고친다. 그런데 인간 정신을 파괴하고 사람을 해치고 일상의 평화를 무너뜨리고 몽니를 부리는 ‘폭력’은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새로운 ‘삶’의 시작은? 폭력은 하지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아야 할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 없는 괴물사회가 됨을 매일 되새겨야 한다.
나의 말과 행동은 어떤 날씨인가? 맑음인가 흐림인가 비오는 날인가? 예측불허의 폭우나 폭설과 한파는 아닌가? 강풍을 동반한 태풍과 홍수로 가정이 무너지고 관계가 끊어져 불통의 쓰나미는 아닌가?
내편 네편 가르다 망한 당파싸움의 거울 앞에서 ‘편’ 가르며 싸우는 일 그만하자. 성실하게 일하고 가족들과 오순도순 정답게 살고 싶고, 상생과 타협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사회를 만들 현명한 국민은 질문해야 한다.
왜 싸우는지? 누구를 위하여 싸우는지? 싸워서 얻는 것이 우리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누가 우리의 삶을 가로막고 불편하게 하는지? 제대로 질문을 해야 바른 답을 찾을 수 있다.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싸우는지? 자기편만을 위해 억지를 부리는지? 코로나도 물러가 살만한데 일년내내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 편도 되지 말고 국민 편으로 옳은 질문으로 바른 답을 찾아야 한다.
싸워서 잃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따져야 한다. 고도성장을 이루느라 놓고 온 ‘사람 다운 삶’을 위한 ‘앎’의 문제를 회복해야 한다. 본래 우리의 성품이었고 소중하게 여기던 삶의 기본이라 조금만 정신 차리면 바로 회복할 수 있는 희망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