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나무는 단군신화 속의 신단수(神壇樹) 이래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였었고, 그 통로를 통해 신의 뜻이 인간에게 내려지고 인간의 뜻이 신에게 전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적어도 일제치하에서 민족의 문화가 집중적으로 탄압을 받아 괴멸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렇게 믿고 살았었지만 작금에 이르러서는 나무의 의미가 너무도 많이 퇴색되었다.
필요에 의해서 심어지기도 하지만 필요에 의해서 당장에 거침없이 베어지기도 한다. 나무가 베어진 자리.
비록 신단수가 아닐지라도, 그래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라하더라도 베어짐의 흔적에서 느껴지는 건 단절의 아픔이다. 고통이 맞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나무가 어느 날 갑자기 베어졌다.
아직 신의 뜻을 내려 받지도 못했고, 아직 인간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건만,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단절 되었다. 이제 무엇이 있어 하늘과 통할 수 있을까?
하긴 하늘 아래 같은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어려운 세상에서 어디 나무 탓만 할 수 있으랴. 싹둑 잘려진 나무의 밑동을 부여잡고 나무를 벤 사람을 원망하면 또 무엇 하랴.
서로를 믿는 마음이 회복되지 않는 한 제아무리 신단수라할지라도 하늘과 땅을 연결할 수 없음이다. 퇴색 되었다. 신단수의 의미도 나무의 역할도.그렇게, 단절 되었다.
덩그러니 세월의 테만 남았다. 나무 한 그루 자르는 일에도 그러할 진데 사람과 사람의 단절은 어떠하랴. 베어진 자리엔 불통으로 얼룩진 상처만 남는다.
나무는 다시 자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소통을 하자. 믿음을 회복하자.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야 말로, 서로를 믿는 믿음이야 말로 신단수 이래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소통하며 살자. 신단수를 되살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