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각박한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을 매일같이 마주하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경계심이라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살아가다 보면 가야 할 방향을 놓치기 일쑤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살펴보면 주위는 경계의 대상들로만 가득차 있다.
그러면 회피를 생각하게 된다. 눈을 질끈 감아버리게 된다. 관계의 개선을 위한 회복의 노력보다는 그들에게서 멀어지는 회피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럴수록 그늘은 더욱 짙어진다.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인 도시의 삶이 피곤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메꽃은 뿌리를 절단하여 심으면 시기에 관계없이 새순이 올라올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고 한다. 생육이 워낙 좋기 때문에 다른 식물에 주는 피해를 막기 위하여 주로 화분에 심기를 권하지만 월등한 생명력 때문인지 주변의 산과 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 또한 메꽃이다.
적군에게 죽임을 당한 병사가 메꽃으로 피어나 아군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메꽃은 충성심을 상징한다. 그 메꽃이 철책을 타고 올랐다. 단절의 철책에서 피어난 메꽃은 어느 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경계심으로 가득한 도시의 삶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메꽃 덩굴 한 그루씩을 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갈팡질팡 길을 잃지 않고 메꽃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삶이라면, 도시의 삶도 회피가 아닌 회복의 삶이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화해의 시대다. 남(南)과 북(北)이 만나고, 북(北)과 미(美)가 만난다.
여전히 풀어야 할 갈등은 남아있지만 이제는 회피를 고집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늘을 벗어던질 수 있는 날을 기대하게 하는 요즘이다.
철책을 타고 오르는 메꽃에게 묻는다.
“철책을 넘어 어디로 가려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