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대

황덕순의 희망을 잇는 사람-2... 「나라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 ‘도쿄의 巨商 서갑호’」

입력 2026.03.04 06:07수정 2026.04.22 18:54파주시대 기자34,864
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나라와 나라가 국교를 맺으면 상대 나라에 외교공관을 설치한다. 공관에 자국 국기를 게양하여 자국 영토와 같은 지위를 누린다. 우리나라는 2024년 2월 기준 수교국 193개국으로 유엔 회원국 중 미수교국은 시리아 1개국뿐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분들은 외교관에 게양된 태극기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감동을 받아 그 순간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특히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나라 사랑이 특별했던 분을 시간여행을 통해 만나보자.
19세기~20세기 일본에 진출한 프랑스·독일·이탈리아·중국·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주일 대사관을 도쿄 아자부에 세웠다. 아자부의 옆 아카사카에는 미국과 캐나다 대사관이 있다. 

아자부는 막부시대 지방 영주 다이묘들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경비에 유리하여 대사관 자리로 적지였다. 도쿄 최고 부촌 미나토구(港區) 아자부(麻布)는 그렇게 외교 1번가가 되어갈 때 미수교국이었던 우리나라는 그림의 떡이었다. 

외교공관도 외교관도 태극기도 없는 토교의 현실에서 부러움과 암담함으로 바라보기만한 분이 주인공이다.
식민지 상황인 1915년 경남 울주군에서 태어난 서갑호이다. 열네 살 때 식민지 주범의 땅 일본으로 건너가 사탕을 팔고 폐지를 모으며 돈을 모은다. 나라 없는 설움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고군분투한 결과 1948년 방림방적(사카모토)이라는 방직 회사를 세운다. 

그 회사가 급성장해 1950년대 ‘돈을 가장 많이 번 재일 교포’가 되었다. 조국 대한민국은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전란 중인 1951년 은행에서 거금의 돈을 빌려 일본 4·6대 총리 마쓰카타 마사요시의 저택 부지로 다이묘 별장보다 한 수 위의 땅을 산다. 여느 강대국 대사관 못지않은 8,264㎡(약 2500평)의 넓은 대지이다. 

1965년 6월 22일 일본과 국교를 맺자 1951년에 구입한 도쿄 1번 요지를 대사관 자리로 무상기증 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1300달러 정도의 약소국으로 변두리 땅을 사기도 어려웠다. 
‘어떻게’의 해답은 “나라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는 담대한 희망을 잇는 서갑호 회장의 의지였다. 때를 기다린 거인의 꿈은 일본의 심장부 도쿄 미나토구 아자부에 한국 영토를 마련하는 안목이었다. 
그런 귀한 뜻을 실현한 서갑호를 이제야 기억하게 되었다. 사카모토방직이 1974년 오일쇼크 때 일본 금융기관들이 대출금을 회수하여 부도를 맞았다. 다급하여 한국 정부에 SOS를 요청했지만 외면했고 서 회장은 2년 뒤 서울에서 61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2024년 7월 12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주일 한국대사관저에 ‘동명재(東鳴齋)‘라는 현판을 새기는 제막 행사가 있었다. 1962년 동경 심장부에 주일 한국대사관부지를 기증한 고(故)서갑호 방림방적 설립자의 아호를 따 동명재(東鳴齋)로 명명하는 식이었다. 
한참 늦었지만 큰 뜻에 보답하는 희망이 이어져 다행이다. “나라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는 ‘높고 귀한 뜻을 잇는’ 중요한 행사였다. “어려울 때 나라를 도운 분을 기억하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한국을 돕겠는가”라며 서 회장의 후손들도 초대했다. 

나라도 국민도 가난했던 시절, 재일 교포들에게 자부심과 긍지가 된 “나라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종소리가 되어 울린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부끄러운 일을 이제 그치라는 경고로 돌린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끄러운 일을 생각하지도 말라는 이때를 위한 가르침이다.
서 회장의 손녀딸은 “한국을 짝사랑한 조부의 자료를 모으는 데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서 회장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기 위해 빈틈투성이 주일 한국대사관서회장 자료관이 정비되는 날을 기대한다.

파주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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