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름다운 우리 말 쓰기’ 지역사회가 나서야 할 때다

입력 : 2013-11-08 00:07:26
수정 : 2013-11-08 00:07:26

기 고
‘아름다운 우리 말 쓰기’ 지역사회가 나서야 할 때다




박재홍(예총회장, 국민대행정대학원 교수)


조간신문을 흩어 내려가다가 “학생 1명이 4시간 동안 385번 욕설”이라는 제목이 눈에 띠었다. 한국교원단체 총 연합회가 EBS와 함께 초, 중, 고생들의 언어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나’ ‘×까’ ‘ ×됐다’ ‘×발’ ‘×새끼’ 등과 같은 욕은 청소년들에겐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초 중 고생 65.6%가 ‘매일 욕을 한다.’고 응답했다니 참으로 걱정이다.

중년 이상 나이 든 분들이 요즈음 청소년들의 전화 메시지 내용을 알아들으려면 학원에라도 다녀야 할 판이다. ‘냉무’가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이 정도는 애교로 봐주어야 한다.

아예 자모만 갖고  ‘ㅎㅎ’ ‘ㅋㅋ’ ‘ㅠ ㅠ’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 아가씨를 ‘깔치’라하고, 헤어지자를 ‘찢어지자’, 부끄럽다를 ‘쪽 팔린다’라고 하면 내 나라 말이지만 도대체 알아듣기 힘들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청소년의 언어생활이 점점 저속해 지는 것과 학교폭력이 심각해지는 것은 상관관계가 있다.

자식을 ‘짜식’으로, 소주를 ‘쐬주’라고 발음하는 것처럼 센소리가 늘어나는 이유도 사회 경제적 생활환경을 반영한다는 발표가 있다. 최근 TV 연예 예능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출연자들의 저속하고 비속한 언어대사가 마구잡이로 안방극장에 침투하고 있는 것도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순수성을 급격히 훼손시키고 있다.

특히 흥미를 주려고 자막을 지나치게 남발하거나 맞춤법을 아예 무시하는 정도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망가져도 너∼무 많이 망가져 버렸다. 

전국적으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비발디’, ‘푸르지오’, ‘힐스테이트’, ‘캐슬’ 같은 낮선 외국 이름들이 주소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시부모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찾아오기 힘들게 하려고 이런 이름들을 지었다는 우수개 소리도 있지만 세상에 제가 사는 동네, 집 이름도 제나라 말로 지을 줄 모르면서 어찌 제나라 글자를 자랑할 수 있을까, 반문해 본다.

오히려 외국에서 K팝의 인기에 편승해서 ‘한글’로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한국어 학당이 북적인다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모국어’가 대접을 못 받고 있으니 기가 막힌 역설이다.

혹자는 건축회사마다 갖고 있는 고유한 브랜드니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굿모닝 힐을 ‘해뜨는 언덕’이라고 부르면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뜨란채’, ‘흰돌’ ‘달빛마을’ 얼마나 정감이 가고 품위 있는 우리말인가, 외국이름으로 브랜드를 붙여야 근사하고 더 잘 팔린다는 ‘편견’이 우리말을 병들게 하고 있다.
 
우리말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것은 저급하고 저속한 문화를 선도하는 방송, 인터넷, 영화 등 대중매체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정부의 무관심도 한 몫을 했다고 본다. 1949년부터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해 오다가 1990년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제외된 이후 한글날은 스쳐 지나가는 기념일정도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한글날이 언제인지 모르는 국민의 수가 37%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 올해부터 한글날이 국가 공휴일이 된다니 다행이지만 매년 이 날이 되면 온 국민이 1446년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하셨던 그 날을 되새겨 보고 우리의 말과 글을 아름답게 써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 ‘한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 ‘한글’의 우수성과 가치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

광복절보다 오히려 한글날이 더 우리민족에게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날일 수 있다.   

다시 조간신문으로 돌아가서, 서울 노원구 상원 중학교는 교사들이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욕을 줄이기 위한 전방위 노력을 시작했다. 욕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인쇄물을 나눠주고 교사가 단어 하나하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정서 순화를 위해 복도에는 명화를 걸고 꽃도 심었다.

TV아나운서를 초청해 올바른 국어사용에 대한 강연을 열고 ’한글사랑 UCC'대회도 하고 있다. 이제 이 학교는 93.5%가 ‘욕사용이 심각한 학교’에서 ‘욕 안하는 학교’로 바뀌었다. 언어생활은 한번 길들여지면 단기간에 바꾸기 힘들다. 느리지만 서서히 아름다운 말을 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면 된다.

한글학회나 한국 국어교육학회 같은 단체에서 우리말을 정화하기 위한 계몽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막상 지역사회에서는 이런 활동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 임진초등학교가 언어문화개선 선도학교로 지정되어 고운 말 다짐대회를 열고 ‘천냥금나무’ 800주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하였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런 운동이 지역사회에 점점 확산되어 나가야 한다. 유치원, 초, 중, 고, 대학 등 모든 학교, 학원까지 동참하고 문화예술단체, 청소년보호단체, 사회봉사단체가 주축이 되어   ‘아름다운 우리 말 쓰기’ 범 지역사회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어찌 보면 진정한 지역공동체의 완성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과 어른들의 올바른 언어생활이 첫 걸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