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파주문화재단에 바란다
입력 : 2024-10-09 00:03:45
수정 : 2024-10-12 15:23:18
수정 : 2024-10-12 15:23:18
윤희정 파주시의원
파주청소년오케스트라의 단장을 맡으며 보낸 시간은 도전과 인고의 연속이었다. 지휘자, 지도자, 사무실, 연습실, 예산… 그 어느 것 하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가 무모한 일이라고 말렸지만, 청소년과 문화예술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있었기에 10년을 운영할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분이 함께 해주셔서 버틸 수 있었고, 파주의 청소년들이 음악을 사랑하게 되고, 그중 일부가 음악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한 것을 큰 보람으로 느꼈다.
파주청소년오케스트라 단장으로서 활동한 10년은 개인적으로는 음악, 더 나아가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문화예술에 대한 파주의 낙후성을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매우 부족했고, 파주의 예술인과 예술단체는 제대로 파악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파주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려 해도,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행정과 예산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었다.
파주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예술단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열정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 파주문화재단의 부재는 가장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문화도시 파주’라는 슬로건은 공허하게만 들렸다.
2018년에 제7대 파주시의회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파주청소년오케스트라는 더이상 운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더 많은 파주의 예술인과 예술단체를 만나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파주의 문화예술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주문화재단이 설립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 소명으로 다가왔다.
2014년에 실시된 ‘파주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타당성 연구용역’에서는 파주문화재단은 시기상조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러나 2018년 당시에는 이미 경기도 31개 시군 중 절반 이상에 문화재단이 설립되어 있었고, 파주보다 인구수나 경제 규모로 뒤처진 김포시, 의정부시, 광명시, 군포시, 하남시, 오산시, 여주시 등에도 문화재단이 설립된 상황이었다.
시의원에 당선되자마자 5분자유발언을 통해 파주문화재단 설립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였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역시나 반응은 미미하였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이후에도 시정질문과 5분자유발언을 통해 틈날 때마다 파주문화재단이 설립되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하여 역설하였다.
또한 시의회 내에 문화예술연구단체와 생활문화연구회의 대표의원을 맡아 시의회 차원에서 문화예술과 관련한 연구활동을 진행하였으며, 동료의원들 사이에 파주문화재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문화예술 현장을 찾아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으며, 예술인들을 시의회로 초청하여 ‘문화예술 지원사업 설명회’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차곡차곡 쌓이고, 파주에 다양한 예술인과 예술단체의 활동들이 이어지면서 파주문화재단은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2022년 지방선거와 2024년 총선에서는 후보들이 앞다투어 파주문화재단 설립을 공약하기에 이르렀다.
이전에는 공약이 공염불에 그치곤 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민선 8기 시정 목표에는 ‘포용사회 문화도시’가 포함되었고, 파주문화재단 설립도 공식화되었다. 그리고 꾸준한 준비 작업을 거쳐 오는 10월 파주문화재단을 공식 출범을 앞두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김경일 시장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처음 시의원이 되어 반드시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파주문화재단의 설립이었다. 2018년에 시의원이 되자마자 파주문화재단 설립을 공론화하고, 6년이 지나 재선의원이 되어 파주문화재단을 설립을 목도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한다.
10년간의 파주청소년오케스트라를 거쳐 간 많은 학생들과 봉사자, 파주 문화예술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많은 예술인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이제는 파주문화재단이 파주시민의 사랑을 받고 예술인들의 지지를 받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시의원으로서의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
그러나 파주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고 해서 파주의 문화예술이 일거에 변화되고 발전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이다. 이미 몇몇 지자체의 문화재단은 본연의 역할은 못하고 많은 문제를 초래함으로써, 시민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원성을 사는 경우도 적지 않고, 일부는 존폐의 기로에 선 예도 있다.
파주문화재단은 뒤늦게 설립되는 것이니만큼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문화재단은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문제가 노출된 문화재단은 반면교사로 삼아 파주시민과 예술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이에 한때 예술단체의 운영자로서, 문화예술에 천착한 시의원으로서 몇 마디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먼저,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여야 한다.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있다. 특히 문화재단은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모여 그들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야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으므로, 능력과 인성을 겸비한 전문가를 등용하여야 한다.
문화재단에서 불거지는 가장 큰 잡음이 바로 인사와 관련된 문제이다. 문화재단의 인사 채용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사적 유불리 등을 떠나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사업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위해 계약직 직원에 대한 평가는 엄정하게 이루어지되, 고용 안정성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문화재단의 직원은 문화예술에 대한 전문성뿐만 아니라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파주의 젊은 인재들이 문화재단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이들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문화재단의 독립성을 강화하여야 한다.
문화재단은 다른 기관과는 분위기가 달라야 한다. 문화예술을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에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여야 한다. 선의의 조언도 부당한 외압과 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다. 외압과 간섭은 애초의 취지를 벗어나게 하고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설립 초기에는 여기저기서 파주문화재단에 청탁과 압력이 들어올 수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직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 파주문화재단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몰라라 방관하자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파주시와 산하 기관의 관계를 답습하지 말고, 파주문화재단의 역할과 위상을 정립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파주시가 새겨야 할 말이 있다. “지원하되 개입하지 않는다”
셋째, 단기적인 성과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문화재단은 매년 진행해야 할 많은 사업들이 있으며, 이를 차질없이 성공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단기적인 성과에만 매달리지 말고, 중장기적 비전을 산정하여 꾸준하게 추진하여야 한다.
재단 사무실 건립, 아트센터 건립, 생활문화지원센터 건립, 전국적·세계적 규모의 아트페스티벌 개최, 예술인·예술단체 전수조사 및 지원사업 등은 단기간에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이러한 사업들은 긴 안목을 가지고 지방선거의 결과와 상관없이 차근차근 추진되어야 한다.
파주문화재단의 대표와 사무처장의 임기는 그리 길지 않다. 단기간의 성과에만 매몰되다 보면, 파주문화재단의 중장기적 비전은 실종되고 눈앞에 보이는 사업들만 추진하게 되고, 결국 파주시 문화예술과의 산하기관으로 전락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파주문화재단이 이제 막 시작점에 서 있다. 파주문화재단은 파주시민과 예술인들의 염원을 담아 탄생한 옥동자이다. 파주문화재단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나, 파주를 문화도시로 견인하고 파주시민이 자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관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