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황덕순의 희망메시지 7 : 단란한 밥상머리 대화는 위대한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이다
입력 : 2024-06-25 22:34:58
수정 : 2024-06-25 22:34:58
수정 : 2024-06-25 22:34:58
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지금은 가족이라고 하지만 ‘식구(食口)’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먹고사는 일이 어려워 보릿고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던 때 그렇게 불렀다.
‘식구(食口)’의 사전적 정의는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다. 끼니는 “아침·점심·저녁과 같이 하루 세 번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이라는 뜻이다.
동서고금과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밥상머리는 자녀교육의 요람이고 산실이다. 하버드, 콜롬비아, 미네소타 대학 연구팀이 밥상머리 대화가 인성함양은 물론 두뇌발달과 학습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하자 미국·일본 등에서 밥상머리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족에게 배운 교훈보다 안전한 언어는 없다. 어떤 사태가 일어나든 언어는 안전자산이다. 학생들의 안전자산인 어휘력과 높은 학업성취는 식사횟수와 대화의 질에 있음을 발견했다.
만 3세 아이에게 읽어주는 책에서 익히는 단어가 약 140개 정도, 식사하며 대화를 통해 배우는 단어가 무려 1,000여 개에 달했다. 밥상머리 대화는 ‘세 살 말버릇 백 살까지 유효한 지혜의 훈련장이다. 밥상머리에서 나눈 고급 언어는 어떤 사태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최고의 자산이다.
아이비리그 졸업장도 없고 MBA 코스도 밟지 않은 스타벅스 CEO 짐 도널드는 “가족과의 저녁 식사자리는 임원회의 만큼 중요하다. 스마트폰·문자·TV가 없는 가정을 경영하는 회의실이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는 자리”라며 적극 실천했다.
징비록을 쓴 유성룡은 “밥상머리에 가족이 함께 하고 최소한 지킬 것만으로도 교육이 된다”고 했다. 자동차, 건설, 조선업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현대 정주영가는 새벽 다섯 시 에 가족식사를 하며 경영 수업을 했다.
정치명문 케네디 가족은 밥상에 앉기 전 신문을 읽고, 사회변화의 안목과 리더의 자질을 식탁토론으로 익혔다.
세계 인구 0.2%이고, 2천 여 년 간 떠돌이였던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30% 정도 수상한 비결도 밥상머리 대화에 있다.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효과적 의사소통’ ‘효과적 상호작용’을 밥상머리 토론에서 익힌 증거이다.
콜롬비아 대학 카사 연구팀은 “하루 20분 가족 식사가 아이의 미래를 바꾸고, 각종 중독과 청소년 비행에 빠질 확률이 절반 이하였다”고 발표했다. 미네소타 대학생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족식사 빈도는 흡연, 음주, 우울증, 자살률과 반비례 했다.
밥상머리 교육의 선도국이던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만족도는 최악이다. 우리의 미래인 십대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중독, 성적스트레스, 자살률과 우울증이 세계 1위다. 학교폭력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점점 느는데 부모들은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이런 줄 몰랐다고 한탄 한다.
아이가 학원 다니기 시작하면 식탁에서 얼굴 보기 힘들다. 밥상머리에 아이가 없어도 불안 해 하지 않는다. 식사는 고사하고 일상적인 대화가 안 되는 순위 TOP이 되고 있다.
두뇌 발달이 가장 왕성하게 일어날 결정적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학원 감옥’에 갇혀있다.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눠야 할 때 학원숙제와 핸드폰에 빠져 익사직전이다..
엘리베이터, 전철,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인사도 안 하고. 웃지도 않고 말도 안 한다. 휴대폰에 딸의 이름을 ‘싸가지’로 저장했다는 일화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다.
밥상머리는 시시각각의 표정, 눈 빛, 감정, 말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가족들의 마음을 읽는 자리이다.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어떤 잘못을 해도 밥상에서 화내서는 안 된다. 모든 고침은 식사 후로 미뤄도 늦지 않다.
자녀들은 부모가 대화(對話) 하자고 하면 ‘대놓고 화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벼르고 참아왔던 이야기를 쏟아내는 감정폭발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아주 그럴 듯하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할 말은 해야겠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말로 포장을 해도 혀 밑에 칼과 도끼를 숨겨둔 것을 다 안다.
밥상머리는 따듯한 밥 먹으며 감사하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자리이다.
아날로그 세대가 디지털 세대와 대화를 하려면 외국어 공부 하듯 공부해야 한다. 입시공부 할 때 영어단어와 문법을 익힌 것처럼 밥상머리 대화의 문법을 공부해야 기적이 일어난다.
곱고 바르고 이름다운 말을 잘 배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시(詩)가 되는 밥상을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