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마거릿 대처의 진심어린 편지 한 장

입력 : 2022-09-20 20:00:04
수정 : 2022-09-20 20:00:04

본지 논설위원

1979년 5월 3일,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 선거기간 중 그녀는 늘 로열 블루색의 옷을 입었다. 노동당은 분홍색, 자유당은 오렌지색, 영국 보수당의 상징색은 로열 블루였다. 

식료품 가게를 하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녀의 선거유세는 독특했다. 슈퍼마켓 앞에서 빵과 고기와 버터가 가득 든 푸른색 장바구니를 오른손에 들고, 왼손에는 그것들이 반밖에 채워지지 않은 분홍색 장바구니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제 오른손에 들린 푸른색 장바구니는 이전의 보수당 집권시절에 1파운드로 살 수 있던 식료품입니다. 반면에 제 왼손에 들린 분홍색 장바구니는 현재 노동당 집권 하에서 1파운드를 주고 살 수 있는 식료품입니다. 

분홍색 장바구니에 담긴 것이 푸른색 장바구니에 담긴 것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만약, 노동당이 5년 더 집권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그때는 장바구니도 필요 없고 그냥 작은 봉투 한 장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마거릿 대처의 직접적이고도 피부에 와 닿는 선거유세를 통해 보수당은 총선에서 승리했고, 그녀는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다. 

전쟁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유가족에게 밤마다 편지를 써 

그러나 수상이 된 그녀에게 많은 시련이 닥쳐왔다. 1982년 4월의 포클랜드 전쟁도 그 시련들 중의 하나였다. 1982년 3월 19일, 아르헨티나의 고철회수업자들이 영국령 포클랜드 동쪽 사우스조지아 섬에 상륙하면서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분쟁이 시작됐다. 마침내 포클랜드에 아르헨티나의 국기가 계양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처 수상은 무력을 써서라도 반드시 포클랜드를 재탈환할 것을 명령했다. 이 전쟁은 대처 수상의 정치적 운명뿐만 아니라, 영국의 국운을 건 물러설 수 없는 일전(一戰)이었다. 결국 두 달 남짓 만에 아르헨티나는 항복을 했고, 25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영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전쟁이 끝난 후, 대처 수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희생자 전원의 가족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그녀는 여름휴가를 반납한 채 영국의 수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망한 병사의 어머니나 아내로서 밤마다 편지를 써 내려갔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의 위대한 리더십은 전쟁의 시점이 아니라 희생된 병사들의 유가족에게 진심어린 편지를 쓰는 그 순간이었다.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게 이상한 제안이 들어왔다. 유세 기간 동안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편지를 매일매일 보내고 싶은데, 대신 써 줄 수 있느냐. 돈이 되는 기막힌 흥정이었다. 어떤 내용이면 되겠느냐는 나의 질문에 배를 쑥 내밀고,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짧은 내용을 보였다. 

여기저기서 좋은 글은 다 모아 누더기 짜깁기를 한 내용이었지만, 그는 나름 만족스런 말투로 “이거 제가 쓴 건데요, 이런 식이면 좋겠어요.” 했다. 

나는 정치꾼에게 관심 없음을 불쾌하게 내비치지 않으려 표정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다.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진심을 전달했다.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이 전쟁으로 희생된 장병들의 가족에게 쓴 편지에 관해 알고 계시나요?” 무슨 뜻인지 알아챌 리 없는 속물 정치꾼의 물음표 가득했던 얼굴. 시간이 지날수록 무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