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안녕 파주', 잘사는 동네 법원읍 대능4리-2편

입력 : 2021-01-19 06:36:21
수정 : 2021-01-27 00:56:47

사진/파주시 제공

주민들과 학생들의 손으로 가꾸어지는 동네를 경험하다.

세월을 머금고 있는 건물들을 부수고 새 건물로 재탄생 시키는 것이 거주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역 발전에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된 건물은 더욱 늘어났다. 

건물을 부수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짓기 시작하니 도시의 얼굴은 똑같아지고 있었다. 어느 지역을 가도 똑같은 얼굴을 한 도시 경관에 다소 거부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지역들은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점점 획일화되는 대한민국의 도시들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곳의 첫인상은 시간을 멈춘 채로 예전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동네였다. 이곳에서 조금씩 사람의 온기가 나는 곳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변화에는 법원읍 주민들과 율곡고 학생들의 노력이 있었다. 
 
#01 안녕, 대능리
자신이 본 것을 말로 설명하려 들기 시작한 나이부터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동네의 옛것은 때가 되면 새로운 건물로 지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작은 동네나, 들, 논밭이 새로운 아파트 단지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본래 있던 마을이 외부의 주도가 아닌 주민과 학생들의 참여로 가꾸어나갈 수 있음을 내게 보여준 동네가 있다. 그곳은 법원읍이다. 

나는 법원읍 율곡고등학교를 다니며 기숙사 3년을 살았다. 미군 부대 주둔지역으로 과거 번화하였다던 법원읍은 내가 생각해왔던 시골 동네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법원읍 사거리에 2차선의 중심도로를 따라 1층, 2층짜리의 다양한 상점들이 쭉 들어서 있다. 

그런데 대능리에서 갈곡리에 가까워질수록 비워진지 오래인 가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점들이 들어선 거리 뒷편으로 일직선 도로를 따라 주거지가 양옆으로 나열되어있다. 집 지붕엔 간판이 계속 붙어있거나, 간판을 뗀 자리가 그대로 있는 걸 보아 과거엔 가게도 함께했던 집임을 알 수 있었다.

사진/파주시 제공

#02 주민들의 주도로 
법원읍에는 감추고 싶은 현실이 있었다. 낮은 단층 사이에 노후한 건물들과 골목길이 미관상 보기에 좋지 않았고 스산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 무엇보다 밤에 골목길이 어둡고 위험해 보였다. 문제 해결이 시급했던 이곳을 변화시키기 위 해 주민이 뭉쳤다. 

주민들 스스로 협동하여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율곡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벽 화를 그려본 곳은 대능리 골목이었다. 골목 입구 앞으로 천현초등학교와 유치원이 있어 어린 학생의 눈높이에 맞춘 벽화를 그렸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학생들이 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 협동하며 작업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지나가는 주민분들의 환영과 응원 몇 마디에 힘내어 그렸던 기억이 난다. 비좁아 더 어두워지기 쉬운 골목까지도 색색 깔의 친근한 캐릭터들이 그려지니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벽화를 시작으로 구 집창촌이 문화창조빌리지로 변화해 주민 과 학생들의 축제의 장소가 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축제의 장소가 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학생들과 주민들과 함께 전통 등불을 만들어 골목길을 밝히고, 축 제 공간의 조명으로 활용해 <달달한 빛 축제>를 장식했다. 

구 집창촌 건물 안에 미술부 학생들의 미술작품이 전시되었고, 플리마켓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재능 을 살려 페이스페인팅을 하며 마을 주민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무대 위에서 연극 부는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주민분들께선 부추전을 부치고, 농작물을 판매하시곤 하셨다. 마을에 활력을 만들고 동네 에 또 하나의 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었던 축제였다.

#03 내가 Green 마을
학교에서 기숙사를 오가는 길 주변으로 몇몇 다문화가정을 보곤했다. 집앞 도로 빨래건조대 위에 널린 옷들의 모습이 점점 친근해 질 즈음에 아프리카 봉사단과 함께하는 벽화활동이 있었다. 

나는 대입준비가 한참 시작될 시기라 참여하지 못했지만, 오고가는 골목길의 이름이 붙여지고 집집마다 내려진 셔터에 따듯한 그림이 그려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우시장 길 앞에 살고 계신 할머니께서 파셨던 고추튀김은 미술반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였었다. 지금 그곳은 공공프리즘에서 문화·공간 그린큐브로 활용되었다가 주민들의 새로운 거점공간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그린큐브로 활용하면서 이 공간은 목요일마다 주민들의 문화프로그램 진행 장소가 되고, 마을 방범대의 활동공간이 되기도 하며 그 앞으로 청소년과 마을 주민들의 플리마켓이 열리기도 한다.

#04 변해버린 동네가 아닌 가꿔지는 동네
법원읍에서 살면서 법원여중과 율곡고를 졸업하고 어느덧 성인이 된 한 학생은 어딘가 계속해서 가꾸어지고 정리되는 동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학창시절 외에도 새롭게 생겨나는 지역 활동이 신기하고, 그 생기가 반갑다고 한다. 

아무래도 미술반과 음악반이 있는 예술중점학급이 많지 않다 보니 법원읍 외부에서 온 학생들도 많았다. 헤이리 주변에 사는 한 학생은 율곡고등학교로 입학하게 되었을 때 동네가 무척 낯설게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런데 벽화를 그리니, 자신이 그린 그림이 동네에서 보이고 등하교 길에서 마주치니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 집창촌이 많아 이 동네의 변화가 그려지지 않았던 주민분들께서도 기존의 것들 위로 하나씩 새로운 변화가 만들어지니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고 하신다. 

앞으로 바라는 건, 지금처럼 학생과 주민간의 관계를 통해 마을을 다듬고 가꾸는 활동이 지속되는 일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지역과 함께하는 교육을 통해 마을이 활기를 얻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법원읍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그 자체를 기대해도 좋은 동네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