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담쟁이를 보며 무심의 경지를 생각하다

입력 : 2020-11-24 20:07:48
수정 : 2020-11-24 20:07:48

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피카소의 그림을 백만 불에 구입한 어느 부인은 
그 그림의 진위가 너무 궁금해서 
미술평론가에게 물었고 진품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도 부인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피카소의 친구인 평론가를 대동하고 피카소를 찾아가서 
피카소 본인에게 직접 작품의 진위를 물었다.
피카소가 대답했다.
“부인, 이 그림은 진품이 아닙니다.”

그러자 같이 있던 피카소의 젊은 애인이 펄쩍 뛰며 이렇게 얘기했다.
“아니 여보, 내가 보는 앞에서 당신이 이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평론가 선생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진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피카소가 대답한다.
“내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리지널이 아닙니다. 
나는 그 전에도 그것과 똑같은 그림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똑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이 그림의 오리지널은 지금 파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에 나와 있는 이야기이다. 
법정 스님은 위대한 피카소의 참 면목을 통해 무심의 경지를 이렇게 설파했다.

“누가 만들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설사 화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 할지라도 
진짜가 아니고 모조품일 수 있다. 
같은 그림이라도 맨 처음에 그린 그림이 오리지널이다. 
그 그림이 자기 존재의 내면에서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을 그릴 때 그 자신도 무엇을 그리는지 알지 못하는 무심의 경지였다. 
위대한 창조는 무심에서 나온다. 
그것은 침묵의 세계이고 텅 빈 충만인 공(空)의 경지다.”

어렵지만 고개를 끄떡이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담쟁이 넝쿨이 붉게 물들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새파랗게 뻗어가던 담쟁이였다.
이제 얼마 뒤면 모든 잎을 떨구고 넝쿨만 앙상하게 남을 담쟁이기도 하다.

제게는 어떤 담쟁이가 진품일까?
혹시 누군가 제게 물어본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금의 담쟁이가 제겐 진품입니다.”
지금의 담쟁이가 가장 강렬하게 제 머릿속에 남았기 때문이다.

피카소도 법정 스님도 될 수 없는 제게는 
공(空)의 경지가 너무나도 어렵고 심오하기 때문이다.

담쟁이가 모든 잎을 떨구었을 무렵에 다시 한 번 담쟁이를 찾아볼 생각이다.
그 빈자리에서 무성했던 담쟁이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 때는 아마도 제 마음이 조금은 더 비워지고, 
조금은 더 채워진 상태일 것이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