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기행③-『삼현수간(三賢手簡)』 , 세 벗의 편지

율곡, 우계, 구봉 세 사람의 우정과 학문적 교유, 기호학(畿湖學)의 본산(本山) 파주

입력 : 2020-07-21 20:01:11
수정 : 2020-07-21 20:01:11

이윤희 논설위원

지난 2016년 파주시에서는 지금으로부터 4백 50여년전에 살았던 3인의 학자들이 재조명 되었다. 조선 중기 파주를 근거로 활동했던 세 사람이 서로 주고 받은 손편지들을 모아 엮은 『삼현수간(三賢手簡), 보물 제1415호』이 읽기쉽게 번역 발간되었다. 

율곡선생을 제외하고는 파주사람들에게 조차 낯설은 우계 성혼과 구봉 송익필 선생을 포함한 이들 세 사람의 우정과 학문적 교유를 엿 볼 수 있는 『삼현수간』은 시대를 초월해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현수간』은 조선 중기의 학자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 사이에 왕래한 편지를 모아 후대에 제작한 4첩(帖)의 편지 모음집이다. 

이 세 사람은 16세기 성리학의 대가들로서 편지의 내용은 소소한 일상사를 비롯하여 이기(理氣) · 심성(心性) · 사단(四端) · 예론(禮論) 등에 관한 진지한 학문 토론 및 처세 등에 관련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편지가 왕래된 시기는 1560년부터 1593년까지로 세 사람이 20대 중반부터 서신 왕래를 시작하여 35년이란 긴 세월을 두고 교유한 기록들이다.

세 사람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율곡 이이 선생이다. 1539년(중종 31) 출생한 율곡 이이 선생은 파주 율곡촌이 선대가 대대로 살아 온 본향이며 호 율곡(栗谷)은 이 마을 이름을 따왔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학자이며 정치가, 경세가로 당시 조선 성리학의 양대 학파인 영남학파(嶺南學派)와 쌍벽을 이룬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우암 송시열, 사계 김장생, 현석 박세채 등 수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특히 같은 고을의 우계 성혼과는 각별한 교우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또한 우리나라 여성의 사표로 지금까지 추앙받고 있다. 

파주는 선생의 묘와 선생을 배향한 자운서원등이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본향 마을인 율곡리와 임진강변의 화석정 또한 선생과 관련된 유적이다.

율곡 선생보다 한 살 위인 우계 성혼 선생은 1538년(중종 30) 출생하여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활동하였다. 율곡선생과 달리 우계 선생은 정치가로서의 삶보다는 학자로서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고을 율곡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고 사단칠정(四端七情) 등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의 문인으로는 조헌, 황신, 이귀 정엽, 윤선거 등이 배출됐으며 서인 소론의 중심 계보를 형성하였다.

파주읍 향양리에 선생의 묘와 우계기념관이 위치하며 파평면 눌노리에 있는 파산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구봉 송익필 선생은 삼현수간에 등장하는 세 인물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그러나 우계 성혼 보다 한 살 위이고 율곡 보다 두 살이 위이니 나이순으로는 구봉-우계-율곡 순으로 한 살 터울이다. 

구봉 송익필 선생은 1537년(중종 29) 파주 교하 심학산 자락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첩소생인 할머니로 인해 신분이 미천하였고 아버지 송사련의 안처겸(安處謙)역모 조작 고발사건에 휘말려 오랜 도피생활을 하며 오로지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율곡, 우계와 함께 성리학의 깊은 이치를 논변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김장생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또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 서인 세력의 막후 실력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김장생, 김집, 정홍명, 강찬, 김반 등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으며 시와 문장에 매우 뛰어나 이산해, 최경창, 백광훈, 최립, 이순신, 윤탁연, 하응림 등과 함께 선조대 팔문장가로도 불렸다. 

이처럼 조선 중기 정치가이면서 학자였던 세 사람이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파주땅은 이들 세 학자의 출신지로서 파주는 추로지향(鄒魯之鄕,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며 기호학의 본산(本山)임에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다.

450여년 전 조선사회를 이끌었던 세 벗의 손편지 『삼현수간』과 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바로 파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