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기행①-파주에 잠든 영조(英祖)의 여인들

입력 : 2020-06-16 21:56:10
수정 : 2020-06-16 21:56:10

이윤희 논설위원
(파주이야기가게 대표/파주지역문화연구소장) 


▲ 화완옹주 묘. 문산읍 사목리 169-15
파주에 잠든 영조(英祖)의 여인들
어머니 숙빈최씨, 후궁 정빈이씨, 화평ㆍ화완옹주 두 딸 

조선 제21대 왕 영조(英祖)는 조선 정치사에서 가장 긴 재위를 한 왕이다. 노ㆍ소론의 치열한 당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며 가까스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등극하자마자 붕당의 폐혜를 열거하며 탕평정국을 펼쳐나간다. 

영조의 탕평책은 왕권의 강화와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는데 기초가 되었고 이에 따라 조선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분야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숱한 고초속에서도 자신이 처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부흥기를 이룩한 영조는 가장 긴 재위와 함께 가장 장수한 왕이었으며 83세를 사는 동안 6명의 아내와 2남 7녀의 자녀를 얻었다.

그런데 우리가 관심있게 살펴 볼 것은 영조의 가족들중에서 파주에 자리잡고 있는 유적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사극 드라마 ‘동이’로 잘 알려진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의 무덤 소령원(昭寧園)이 광탄면 소령원길 41-65번지에 있다. 사적 제3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숙빈최씨는 최효원(崔孝元)의 딸로 1670년(현종 11) 11월 6일 태어나 7세에 입궁하여 무수리 생활을 하던 중 숙종의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었다. 그리고 1694년(숙종 20) 9월 13일 창덕궁 보경당에서 영조를 낳았다. 

1718년 3월 19일 춘추 49세로 사망했으며 그해 5월 12일 당시 양주땅이었던 지금의 광탄면 영장리에 장사지냈다. 

영조는 1725년(영조 1) 11월에 어머니 숙빈최씨를 위하여 육상묘(毓祥廟)를 건립해(현 서울 종로구 궁정동, 七宮) 숙빈최씨의 신판을 봉안하고 그 옆에 여막을 만들게 하였다. 

처음에는 소령묘로 불렀으나 1753년에 육상묘를 육상궁으로 개칭하면서 원으로 승격시켰다. 영조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은 지극했다. 

『영조실록』, 영조 36년(1760) 10월 1일 기록을 보면 ‘영조가 소령원에 충재(蟲災)가 있어 사초(莎草)가 모두 말라 친히 거둥하여 사초를 고쳐 입히고 융복(戎服-옛 군복)을 갖추고 원소에 나아가 봉심하고 대신과 예조, 호조, 공조판서로 하여금 같이 일을 감독케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외에도 여러차례 소령원을 찾아 온 기록이 확인되고 있다. 

소령원과 마주하고 있는 광탄면 소령원길 41-38번지에는 사적 제359호인 수길원(綏吉園)이 있다. 수길원은 영조의 큰 아들인 효장세자(孝章世子) 진종(眞宗, 추촌)을 낳은 정빈이씨(精嬪李氏)의 무덤이다. 

정빈이씨는 이준철(李竣哲)의 딸로 1694년(숙종 20)에 태어나 1701년 입궁한 후 영조의 후궁이 되었다. 1719년 2월 15일 한성부 북부 순화방(巡和坊)에 있는 창의궁(彰義宮)에서 효장세자를 낳았다. 

1721년(경종 1) 11월 16일 춘추 28세로 사망해 그해 12월 14일 이 곳에 장사지냈다. 소령원과 수길원에 묻힌 두 분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다. 그래서일까? 두 무덤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지만 동떨어져 있다. 

소령원과 수길원은 문화재보호를 이유로 현재 공개되지 않아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영조의 두 딸 무덤도 파주에 있다.

영조가 유난히도 사랑했던 3째딸 화평옹주묘(파주시향토문화유산 제13호)가 파주읍 파주1리 산57-1번지 군부대 내에 남편 박명원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

화평옹주(和平翁主)는 영조의 3째 딸로 영빈이씨(暎嬪李氏) 소생이다. 1727년(영조 3) 창경궁 집복헌(集福軒)에서 태어나 1748년에 일찍 죽었다. 남편 박명원(1725~1790)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금성위(錦城尉)가 되었으며 시호는 충희(忠僖)이다. 

▲ 화평옹주 묘. 파주읍 파주리 산 57-1번지 군부대 내에 있다.

영조의 화평옹주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옹주가 죽기전에도 파주 마산의 사가로 옹주를 찾아와 손을 잡고 슬피 울었으며 영조 25년(1749) 2월 11일에는 직접 화평옹주의 무덤을 찾은 기록도 보인다. 

화평옹주의 무덤 앞에 세워진 묘비문은 영조의 친필로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산읍 사목리 169-15번지에는 영조의 8째 딸인 화완옹주묘(파주시향토문화유산 제14호)가 있다. 

화완옹주(和緩翁主) 역시 영조와 영빈이씨(映嬪(李氏)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화완옹주와 합장된 남편 정치달(1732~1757)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일성위(日城尉)가 되었으며 시호는 효민(孝敏)이다.
 
소령원과 수길원, 화평옹주묘와 화완옹주묘. 파주에 잠든 영조의 여인들이다.

그밖에도 영조의 큰 아들인 효장세자가 잠든 파주삼릉의 영릉(永陵)과 영조가 소령원에 묻힌 어머니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기복사(祈福寺)로 삼았던 보광사가 파주의 고찰로 남아있다. 

이처럼 파주 곳곳에 남아있는 영조관련 유적을 통해 당시의 정치사적 흐름속에 감춰져 있던 영조의 가족에 대한 효심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확인해 보는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