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연탄을 닮아보자

입력 : 2018-12-19 20:02:15
수정 : 2018-12-19 20:02:15


▲ 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몇 년 전,
녹록치 않은 현실에 낙담한 청춘들을 거리 곳곳에서 응원하는 예술가와 그의 작품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뜨거울 때 꽃이 핀다.’

퍼포먼스 아티스트인 이효열의 작품인 ‘연탄꽃’의 부제이다.

‘남을 데워주는 연탄처럼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이효열 작가는 당시 인터뷰에서 “집 앞에 있는 연탄을 보다가 문득 ‘연탄도 저렇게 뜨겁게 자신을 태워서 남을 데워주고 생을 마감하는데,
나도 연탄처럼 치열하게 살아야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연탄에 꽃을 꽂아봤다”고 했다.

이후 꽃을 꽂은 연탄재를 발로 걷어차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오히려 부러진 꽃을 다시 꽂아주거나 비 오는 날 연탄꽃이 젖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들이 생겨났었다.

‘너는 나를 떠났지만,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같은 마음을 담은 쪽지를 놓고 가는 이들도 있고, 작품을 놓고 오면 ‘작가님이 꽃 선물을 주고 갔다’며 반기는 카페가 늘었으며,
“우리 학교 앞에도 놓아 달라”고 연락을 해오는 학생들도 생겼다고 했다.
젊은 작가의 뜨거운 열정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청춘들의 미래는 여전히 잿빛이고, 추위는 갈수록 혹독해지고 있으며, 암울한 겨울을 살아내야만 하는 서민들의 발걸음은 무겁다.
한동안 유행처럼 번지던 ‘연탄 나누기’라는 봉사도 이제는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적 퍼포먼스에 그치고 있다.
세상은 갈수록 팍팍해져 가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겨울이 그야말로 생존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봉사다.

봉사는 삶이 힘든 이들에게 전하는 이 세상의 온정이다.
아티스트인 이효열은 작품으로 온정을 전했지만 그러한 재능이 없는 우리들은 온 몸으로라도 온정을 전해야 한다.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온 몸으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연탄봉사를 하던 청춘들의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몸은 비록 힘들 테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연탄꽃이 활짝 피었었다.
그런 미소를 보기가 어려워진 세상이기에 그런 미소가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몇 년 후,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지 말자.
기력이 떨어진 몸으로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라며 자책하지 말도록 하자.
이번 겨울.

연탄을 닮아보자.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뜨거워져 보자.
얼굴 가득 연탄꽃을 피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