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황덕순의 말하기수업(6)

『그 날을 오늘로 사는 지혜』

입력 : 2017-12-22 01:55:40
수정 : 2017-12-22 01:55:40


칼럼위원 황덕순
파주교육청교육자원사센터장


새로운 다짐과 비장한 각오로 새 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2017년도 한 달 정도 남았다. 
 

어린 시절에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던 시간이 이제는 총알처럼 빠르게 느껴진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는데 왜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느끼는지 시간의 속성은 참으로 오묘하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시간은 운동경기의 비디오판독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느껴지고, 나이든 사람들이 느끼는 생체시계는 빨리 감기를 하는 초고속 화면처럼 보이기 때문에 한 주가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난다고 느낀다.
 

소중한 시간을 물 쓰듯 하면서 집사람과 부부로 살아온 날들을 세어보니 36년이나 되었다.  긴 세월 함께 살아오면서 부모님과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다짐한 ‘혼인서약’을 생각해봤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잊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의 사건은 어린 아이로 만난 제자가 어른이 되는 결혼식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을 받은 후의 일이다. 이번이 열다섯 번째 주례이다. 우리 딸들의 결혼식 주례까지 꼽으면 열일곱 번 주례를 섰다..  
 

주례사를 준비하면서 문득 ‘나의 결혼식 주례사’는 무슨 말씀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한마디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주례를 서는 내가 ‘나의 주례 말씀’을 잊고 살았다?  평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 ‘주례사’ 생각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갑자기 답답해졌다.


자신의 결혼식 주례사를 잊고 살면서 신랑 신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더욱 답답해졌다. 시험지를 받아든 수험생이 답이 하나도 생가나지 않는 답답함보다 더 막막해졌다.
 

그래서 고민 고민하며 깨닫게 된 사실은 주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주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례를 부탁하는 신랑과 신부는 주례자가 사는 모습을 생활 속에서 봐왔으니 결혼식 날에 “주례의 자리에 서서 우리 결혼의 증인이 되어 주세요.” 라는 초대이고 부탁이었을 것이다.
 

어렵고 힘든 인생의 터널을 지날 때 지혜로 깨닫게 돕는 “멘토’가 되어 주세요.” 라는 부탁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랑과 신부의 초대장을 받은 모든 축하객들은 모두가 주례선생님들이다. 


 첫 번째는 부모님이시고 일가친척과 친구들이 두 번째 ‘주례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랑 신부가 살아가야 할 날들은 장미꽃이 활짝 핀 탄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지 못한 어려움과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는 힘들고 어려운 고비도 있을 것이다.


행복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날 때가 있고 힘에 부쳐 빨리 지나기를 소망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이 때 힘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며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 하는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한 시간 내에 치루는 ‘예식장 결혼식’에서 말 몇 마디로 삶에는 지혜가 되고 부부 사이에는 다짐이 되는 그런 교훈을 전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40여 년 간 부부로 살아오면서 깨달은 행복한 가정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는 주례사를 ‘나에게 하는 심정’으로 전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지키는 일이다. 시집가는 딸에게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봉사 삼년‘의 삶을 살라고 가르쳤던 선조들은 “혀끝에서 모든 세계가 이루진다.” 라는 교훈을 실천한 선각자들이셨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서 말의 지혜를 담은 10가지 소통방업에 대한 유인물을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 살짝 사이에 끼워 넣었다. 언젠가 삶이 고단할 때 ‘혼인 서약’을 꺼내볼 때를 소망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든 신부가 아름답지만 오늘의 신부는 특별히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신부의 기품은 3년. 착한 신부의 덕은 30년. 그리고 지혜로운 신부는 3대를 평안케 한다고 한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아름답고’ ‘착하고’ ‘지혜로운 그 신부’가 바로 우리 집사람이고 각 가정에서 한 남편의 아내로, 자녀들의 어머니로, 그리고 시부모님들의 며느리로, 가문을 일으키는 사명자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있음을......
 

한 해를 돌아보며 못다 이룬 일을 마무리 하는 이 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고 사랑하겠다는 그 ‘혼인서약’” 을 실천해야겠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