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황덕순의 말하기 수업 (5)

「만일 내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입력 : 2017-11-30 00:39:35
수정 : 2017-11-30 00:39:35




황덕순 위원
파주교육지원청 교육자원봉사센터장


날씨가 쌀쌀해졌다. 단풍이 지나가면서 겨울 준비하라고 속삭인다. 그 소리에 놀라 부족한 운동을 하려고 가까운 학교 운동장으로 나갔다.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금요일 오후부터 학교는 이틀간의 방학을 맞아 조용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별빛독서’라는 주제로 가족단위 책 읽기 행사를 하느라 교실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조차 사라져가는 시대에 자녀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진지한 가족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밤이 깊어지면 운동장으로 나와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한다고 한다. 문자로 기록된 책을 통하여 배우는 지식이 현미경으로 보는 ‘좁은 공부’라면 천체망원경으로 별자리를 관찰하는 일은 몇 광년 전의 빛과 만나는 ‘큰 꿈 공부’일 것이다.

미디어에 중독된 시대에 아이들에게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책을 백번 읽으면 자연히 뜻을 깨닫게 된다)의 지혜를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책에서 찾는 ‘통 큰 공부’기회를 마련한 선생님들이 있음을 감사한다.
 
‘별빛독서’와 같이 가족단위 독서행사를 학교에서만 감당할 일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주최하는 마을 행사로 넓혀 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가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가 들려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너는, 엄마가 한 번이라도 믿어 준 적 있니?” “얘는, 엄마가 한 번이라도 믿어 주면 내가 왜 이렇고 다니겠니?” “너의 엄마나 우리 엄마나 다 똑 같아” “매일 그 지긋지긋한 공부하라는 ‘잔소리’에 지쳤어” “엄마와 한 바탕 하고 너에게 전화 한 거야.”

여학생 둘이 벤치에 앉아 엄마의 ‘잔소리’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느라 누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춘기를 힘겹게 지나가는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에게 ‘엄마의 잔소리’는 다이얼이 맞지 않은 라디오 잡음 같고, 공감할 수 없는 불통의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부모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생각에 욱하고 뛰쳐나와 서로의 상한 감정을 위로하는 대화에 감히 끼어들어 충고를 할 수 없었다.
 
이 학생들보다 먼저 살아온 어른으로서 공부걱정 없고 다툼이 없으며 좋은 성적표보다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좋은 사회를 만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미국 작가 다이애나 루먼스의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손녀딸들을 키우며 자녀교육에 고민하는 우리 두 딸에게 ‘잔소리’가 아니라 자녀교육의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가 먼저 읽으며 권해본다.「내가 만일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더 많이 아는데 관심을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을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를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너무 진지하게 굴지만 말고, 진지하게 놀아주리라.

더 많이 안아주고, 다툼을 덜 하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먼저 아이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내 아이가 크건, 작건 그건 문제되지 않는다. 이제부터 나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리라.

읽을수록 마음에 와 닿는다. 아이 셋을 둔 가정에서 부부가 책을 읽고 대화를 하였더니 아이들도 덩달아 책을 읽더란다. 백 마디 잔소리보다 한 권의 책을 같이 읽고 시 한 편을 감상하며 같은 말 같은 마음으로 따스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지금이라고 생각되어 손녀딸들에게 동화책 들고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