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황덕순의 말하기 수업 (1)

입력 : 2017-08-29 20:57:29
수정 : 2017-08-29 20:57:29



황 덕 순 위원
파주교육지원청 자원봉사센터장

나는 나 자신에게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무슨 꿈을 꿀까?’라고 물어본다. 나는 ‘청년 시절로 돌아가면 어떤 실력을 갖춘 사람이 될까?’를 생각해본다.

나는 요즈음 ‘무슨 일로 나 자신을 유능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가꿀까?’를 생각해본다. 어른이 된 지금 어린 시절이나 청년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돌아볼 수는 있음’에 감사한다.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중요한 가치가 ‘말’이라는 것을. 그때는 말의 중요한 가치를 잘 모르면서 손 먼저 들고 정답을 말하는 것이 실력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손들고 말 잘하기 위해 뽐냈는데 살아가면서 깨달은 것은 ‘잘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말하기 수업’의 학교를 마음속에 열고 그 학교의 유일한 학생이 되어 날마다 말을 배우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말 많은 홍수 시대에 ‘생수와 같이 꼭 필요한 말’로 좋은 사이를 만들고, 아름다운 꿈을 함께 나누고, 서로 공감하며 소통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말하기 수업의 첫째 시간을 열었다.    

우리 집은 요즈음 ‘잔칫집’이다. 4개월 반 차이로 손녀딸 둘이 태어났으니 1년 사이에 부잣집이 되었다. 주말이 되면 아기 아빠들까지 모이게 되니 딸 둘이 출가한 뒤에 두 식구만 살던 집에 식구가 여덟이 되었다. 밥상을 두 개는 펴야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우리 집은 잔칫집’이 맞다.

고모 여덟 분과 삼촌 세 분. 우리 5남매가 자란 추억 속의 우리 집은 늘 ‘잔칫집’ 같았다. 식구들이 많아 음식상이 풍성하게 차려지고 즐거운 이야기가 넘치는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잔칫집’ 분위기를 좋아한다.

어느 날 모임에 갔더니 손자손녀 쌍둥이를 얻은 친구를 만났는데 대뜸 하는 말이 “우리 집은 늘 전쟁터야!”, “쌍둥이 둘이 ‘여기서 빽’, ‘저기서 빽’하고 울어대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모든 일을 두 번씩 해야 하니 “몸이 남아나지 않아!”라며 불평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잔칫집과 전쟁터?” 손자손녀들이 둘씩인 건 같은데 어떻게 한 집은 ‘잔칫집’이고 한 집은 ‘전쟁터’일까? 말 한마디가 지닌 의미가 참으로 크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무의식적인 말 한마디에 ‘잔칫집’이 되기도 하고 ‘전쟁터’가 되는 상황 생각을 하니 손녀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 ‘말하기 수업’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데이빗 A 씨맨즈는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책에서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기록 장치들을 가졌다. 반면에 그들은 가장 나쁜 해석자들이다”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한마디를 아기들은 다 기억하고 “나 때문이야”라고 해석 한다니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말로 다할 수 없다.

할아버지가 되면서 딸들의 육아 방법을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우리 세대보다 훨씬 지혜롭게 손녀딸들을 양육하고 있음을 알았다. 기저귀 차는 것을 싫어하는 손녀딸에게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얼마나 영리한지 두 팔을 잡지 못하게 만세를 부르고 뒤집기를 하여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순식간에 도망친다. 얼마나 답답하면 저렇겠나 싶어 벗은 채로 마음껏 뛰놀게 하고 싶지만 아무데나 쉬를 함으로 감당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아 기저귀를 채워야 하는 데에도 지혜를 필요하다.

아기가 걸음마를 하면서 밖에 나가고 싶은 충동을 이용하여 엄마가 “어기 가자”라고 하면 아기는 기저귀와 무릎보호대는 물론 양말을 들고 달려온다. 아기 엄마는 기저귀를 채운 다음 꼭 아기를 안고 현관문 밖에 나갔다 들어온다.

“기저귀를 채웠으면 됐지 왜 안고 나가니” 라고 물었더니 “아기에게 거짓말하기 싫어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사소한 거짓말도 횟수를 더하다 보면 “거짓말은 해도 되는구나!” 라고 해석하여 거짓말 하는 아이가 될까봐 ‘엄마 스스로 말 한 것’을 지키려고 그렇게 한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내가 말 한 것을 자신이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행일치의 지혜를 삶으로 실현하는 딸의 행동에 말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떤 학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10분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하루에 “2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언어의 민족이라 일컫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생에 교훈으로 삼는 말이 ”이디시코프“라고 한다.

이 말의 의미는 ”혀 끝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마음을 다치거나 생명을 끊게 하기도 한다. 말의 홍수시대에 말하기 수업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세대를 향한 작은 소망이 있다.

말의 아름다움을 삶의 아름다움으로 가꾸는 지혜로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가족 간에 친구 간에 이웃 간에 세대 간에 말문이 막히고 소통이 안 되는 이 시대에 지혜로운 말로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선물하는 희망의 말씨가 온 세상에 뿌려지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며 첫 번째 수업을 이렇게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