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율곡마케팅, 내실 다져야 할 때.
수정 : 2017-07-05 23:20:06
▲ 파주학당 서교송
▲ 금촌동 서원마을 주공아파트 7단지 아파트 율곡 캐리커처
율곡 마케팅이 뜨겁다.
우리 시의 곳곳에서 율곡 선생의 모습을 뵐 수 있다. 아파트의 벽면이나 대형 전광판, 거리 곳곳의 안내판들, 또 관공서에서 발행하는 책자나 홍보물 심지어 공문서에서도 율곡선생 캐리커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관련 문화 프로그램들도 풍성하다. 대표적인 추모행사인 ‘율곡문화제’는 30회를 맞았고, 문화원이나 민간 문화단체 등에서 진행하는 ‘파주삼현 유적답사’, ‘할머니가 들려주는 파주이야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율곡선생의 삶과 파주에 대한 이야기가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또 예술단체에서도 율곡 선생을 주제로 한 연극을 매년 공연해오고 있으며, 율곡선생유적지에서 개최해온 서원음악회도 특색있는 음악회로 시민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최근에는 시에서 주최한 ‘율곡이이 구도장원길 걷기’, ‘율곡학당’, ‘율곡코드’ 등의 프로그램 역시 시에서 제작한 율곡 캐릭터와 결합해 파주가 율곡선생의 본향임을 알리고 있다.
파주의 문화원형 중 대표적인 위인이신 율곡선생을 소재로 한 이 같은 사업들은 우리 시민들에게 역사문화 공동체로서의 동질감과 연대감을 높이는 중요한 자산으로 기능하며, 산업적으로도 관광파주의 주요한 테마로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할만하다.
유적지의 혁신적 정비와 적극적 활용이 최우선이다.
▲ 자운서원 전경
이 같은 파주시의 율곡마케팅은 한 때 강릉의 율곡 관련 인프라나 콘텐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지적에서 벗어나 일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보다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내용이 일시적이고, 성과거두기에 급급해 지속적인 발전의 바탕을 다지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파주에서 율곡선생과 관련해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법원읍 동문리에 위치한 율곡선생유적지이다. 율곡선생과 선생의 후학으로 기호학파의 큰 학자인 사계 김장생과 현석 박세채를 모신 자운서원이 있고, 율곡 선생과 그 어머니 신사임당이 잠들어 계신 곳이니 율곡선생 추모사업의 핵심이 되는 곳이다.
지난 2013년에는 그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52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적으로 지정되기 이전이나 이후에 유적지를 가꾸거나 율곡 선양을 위한 노력이나 결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적지의 관리와 관련해 매년 환경관리의 문제점이 지적되곤 하지만, 위탁관리 단체의 문제로만 치부할 뿐 개선을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관리인력의 수나 예산의 지원이 적정한지 면밀히 따져서 유적지 활성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와 발전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말 수탁단체의 문제라면 과감히 위탁을 해지하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관리나 활용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 없이 문제가 제기되면 수탁단체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말 그대로 현상관리에만 머물러있다는 것이 세간의 지적이다.
▲ 사임당 영당 제향
사임당 영당 건립하자.
자운서원 동재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임당 제향은 파주의 부끄러움이다. 사임당이 잠들어계신 이곳 파주에서 사임당을 추모하는 마음을 모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또 그 마음을 제향으로 담아내는 자운서원 유림이나 신사임당추모선양회의 노력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제례의 장소가 문제이다. 서원의 말단, 학생들의 거처였던 누추한 장소에서 겨레의 어머니상이라 칭송받는 사임당의 제향을 치르는 것은 추모가 아니라 수모(受侮)이다. 누가 보더라도 옳지 않고 부끄러운 일이다.
새로운 지적도 아니다. 매년 문화 관계자들과 유림들 사이에서 영당(影堂) 건립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국가유적이므로 국비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정말 파주시가, 시민들이 율곡선생과 사임당을 존경하고 지역의 위인으로 선양하고자 한다면 파주시의 예산으로 또는 주민들의 성금을 거둬서라도 작은 영당이라도 짓고 사임당의 영정을 모셔야 하지 않을까? 새로울 것도 없고 뻔한 문제제기가 말로만 되풀이되는 현실을 타파해야 율곡의 고장이라는 자랑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 화석정 매점
화석정 방치도 개선해야
임진강변의 화석정 역시 율곡선생의 대표적 유적이지만 문화재 관리에는 적극적이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정자 아래 주차장에서 음료 등 잡화를 판매하는 어르신이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다지만, 유적 입구에서 마주치는 영업용 테이블과 상품들로 넘쳐나는 정돈되지 않은 매점의 모습은 문화재와 어울리지 않는다.
또 문화재의 관리상태에 대한 관람객들의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화석정을 책임있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관리자가 매점을 운영하지 않고 문화재 관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시에서 고용하고, 이를 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책임있는 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
또 화석정 내부의 현판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정비하여야 한다. 정자 내부의 현판은 정자의 역사를 담고 있는 또 다른 문화유산이다. 현재는 이전에 걸려있던 현판을 사진으로 인화해 현판처럼 보이게 해 놨는데, 성의 없는 임시조치임을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지 묻고 싶다. 원래 현판의 보수와 재설치가 어렵다면, 이전 현판을 최대한 모사해 새롭게 제작하는 방안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파주시가 주최하는 율곡선양사업, 참가신청은 서울로?
율곡선양 사업에 관련해 유적의 정비나 효율적 운영 방안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 율곡을 테마로 한 콘텐츠들이 적극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시에서 진행하거나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지역의 문화적 잠재력을 위축시키는 역기능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시에서 주최 또는 후원하는 사업들의 진행 주체들이 외부업체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율곡이이 구도장원길 걷기’는 경기관광공사가, ‘율곡코드’와 ‘율곡학당’은 서울 소재 업체에서 사업을 진행했다. 이는 2015년과 2016년 율곡문화제를 타 지역의 상업기획사가 맡아 진행한 것과 다르지 않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주요사업들이 파주를 잘 알지 못하는, 파주에 대한 애정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외부 업체들에게 맡겨지고 있는 것이다. 사업은 파주시에서 주최한다고 하는데, 참가신청은 수원이나 서울에 해야 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파주 문화행정의 현주소이다.
율곡문화제, 문화원에 돌려줘야
문을 닫고 살 수는 없다. 외부의 선진기법을 적극 수용해야 함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주체는 파주여야 한다. 외부에서의 참여는 수익을 전제로 한 것이고, 늘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성을 가지고 진행되기 어렵다.
지역민들은 관객이나 들러리로만 참여하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가버리면 남는 것이 없다. 한순간 화려하게 포장될 수는 있어도, 지역에 대한 이해나 사랑이 없이 지역문화의 뿌리를 키우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율곡문화제의 경우 2년간 상업기획사가 입찰을 통해 사업을 진행했고, 지난해의 경우 지상파방송사가 낙찰을 받아 큰 기대속에 문화제를 치렀지만 성과는 보이지 않았다. 시 자체적으로는 잘했다고 평가를 했지만, 잘하지 못했다.
최근 2년 동안 그 이전의 배에 달하는 막대한 도비 예산을 지원받았지만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 내외부의 중론이다. 프로그램과 예산서를 꼼꼼히 대조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고, 행정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30주년이 되는 올해 역시 율곡문화제는 입찰을 통해 외부 업체가 진행할 전망이다.
파주를 알지 못하는 외부의 업체에 율곡문화제를 계속 맡겨서는 안된다. 또 문화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운 담당 공무원의 손에 문화제를 맡겨두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그간 율곡문화제를 꾸려온 파주문화원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 옳다.
문화원이 더 잘했었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원으로 대표되는 파주시내의 문화예술 단체와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화제를 꾸려가는 과정이 곧 축제이기 때문이다. 문화제의 중심은 파주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의 주민들이 만들고, 참여하고, 즐기는 지역 고유의 축제로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이어질 수 있다.
▲ 율곡문화제 사진
흥행보다 진실성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
최근 진행된 ‘율곡이이 구도장원길 걷기’ 프로그램은 운영주체에 대한 아쉬움은 물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선뜻 동감하기가 어렵다.
한양으로 가는 길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둘레길을 걸으며 율곡선생이 과거를 보기위해 한양으로 아홉 번이나 오갔던 길이라는 둥, 평범한 바위굴에 ‘장원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굴을 통과하면 무슨 시험이든 합격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둥의 이야기를 입히고 홍보하는 것은 ‘학문을 수양함을 평생의 일로 여기고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한다’던 선생의 가르침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최근 파주시와 문화원에서 잘못된 구봉선생의 영정을 대외적으로 소개한 일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된 존경과 추모의 마음없이 사업의 성과를 대내외에 보이기 위해 급조된 프로그램들은 그 생명력이 오래 갈 수 없을뿐더러, 시민들의 사랑을 받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울러, 율곡의 고장임을 시의 정체성으로 전면에 내세운 만큼 국비나 도비 지원에 매달려 주저하기 보다는, 파주시의 자체 예산을 확보해 관련 사업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적극성과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파주가 율곡의 본향이며, 문향(文鄕)이고, 평생학습 도시 또는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로 인정받을 수 있고, 또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