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도시 파주의 격을 높이자

입력 : 2017-06-19 21:21:24
수정 : 2017-06-19 21:21:24


▲전향규
THE ZENITH 발행인


아주 오랜 기억이다. 취재 차량인 포니를 몰고 사진기자와 함께 고양을 거쳐 이곳 파주까지 취재를 나온 일이 있다.


당시 일산의 신도시를 준비하던 장항 일대 논두렁 사이로 겨우 난 신작로를 따라 현재의 심학산 아랫길로 이어지는 옛길을 타고 문산까지 달리는데 족히 2시간을 넘게 걸렸다.

정비 되지 않은 전답과 띄엄띄엄 풍경처럼 펼쳐져있던 동화 속 마을들이 파주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있을 때다. 지금 생각해보니 교하신도시-운정 신도시가 들어선  그 일대에 자연림이 펼쳐져있고 농수로가 간신히 취재차량을 인도하던 시절이다. 1980년대 중반 이야기다.

필자가 이곳 파주가 품고 있는 신도시 운정 지구로 들어와 둥지를 튼 것도 그새 6년째다. YTN의 사장을 지내신 선배의 권유로 일산 화정동에 들어와 2년을 살던 내가 20여 년 전 이곳 운정역 주변에 전원주택을 짓고 서울 사람들을 불러 모아 종종 삼겹살파티를 열어주었던 KBS드라마국장 출신 선배의 꼬드김에 또 운정으로 이삿짐을 옮겼으니, 귀 얇은 필자가 후자의 결행에 대해 아직도 ‘잘한 일’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연유는 무엇일까.

각설하고, 30여 년 전 중앙언론사 기자의 신분으로 최전방이라 여겼던 이곳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취재를 다녔던 필자가 지금은 내 삶 후반의 닻을 이곳 파주 신도시에 내리고 파주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이젠 건설적 참견도 하나의 권리에 다름 아니라 믿고 미주알고주알 간섭을 좀 해볼까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기존 도시 주변 위성도시들이 생겨나고 신도시 열풍이 불면서 급조 신도시의 양태가 전체 국민들의 삶의 정서까지 바꾸어놓았다. 서울 안쪽에 들어섰던 목동지구 상계동지구에 이어 일산 분당 같은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이들 신도시의 개념이 안착되기까지 십수년이 걸렸다.

많은 시행착오와 편견과 아집들이 신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이질적 문화로 자리잡아갔고 이기와 방종의 순환을 거쳐 서서히 안착한 신도시들은 이제 많은 소시민들의 부러움속에 성숙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군사도시라는 오랜 오명의 도시 파주에 출판단지가 들어서고 대중문화의 중심세력들이 이 지역을 근간으로 성장하면서 문화-예술적 향연이 영글어지고 있음은 파주만의 자산적 가치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급조 신도시가 급성장하고 외지인들이 해일처럼 밀려드는 현상 이면에 신도시의 격을 높이려는 파주시의 정책은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황폐화되어가고 있는 운정지구 가온호수 주변의 수백 억 원대 공룡 같은 건물들은 왜 7~8년째 폐가처럼 텅 비어있으며, 야외 공연장이라고 만들어놓은 그곳에는 왜 파리 모기들만 득시글거리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시도 때도 없이, 출퇴근시간, 휴일 가리지 않고 경찰병력을 총동원한 채 신도시로 유입된 시민들을 모두 범죄인 취급하듯 지나칠 정도의 검문검색에 교통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치안행정은 그들 설명대로 ‘위반 시민이 많아서’일까? 신도시 주변으로 아직 건설되지 않은 공한지(空閑地)에 경작 금지라고 도처에 표지간판을 세워놓고 단속하던 LH와 파주시가 이젠 아예 사방 공한지에다

주말농장이라고 선전하면서 이곳을 일부 주민들에게 분양하게 하고 온갖 퇴적물을 양산해내면서 농약을 살포하는 바람에 아파트 창문만 열면 갖은 악취로 고통을 호소하는 다른 주민들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는 것인지…이래 저래 희망을 가지고 들어온 파주 신도시 사람들 중에는 아직 닻도 내리기 전에 다시 짐을 사야겠다는 원성이 들려오는 것은 무슨 연유에선지 파주시는 냉정하게 살펴봐야할 줄 안다.

할 일 많고 처리해내야 할 일 많은 파주시가 아직도 옥중 결재로 이어가면서 시민들을 봉으로 아는 현직 시장은 무슨 배짱으로 직을 고수하고 있는 것인지,

전입신고 하고 이곳에 와서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데 모든 행정력이 집중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쩐지 파주시는 그런 콘텐츠가 안 보인다. 경찰 행정력은 들어와 있는 신도시 시민들을 다시 쫒아내기에 급급해 보이는 모습이다.

언젠가 통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적 수준과 도시 환경의 양태,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점철된 도시가 파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파주를 이끄는 시 행정력과 시민단체, 오피니언 리드 그룹들과 일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살기 좋은 파주 만들기 운동’은 결코 요원한 것이 아니다.

파주에 전입 신고한 신도시의 ‘참 괜찮은 자원’들도 적극 활용하고 절대 부족한 세수(稅收)를 위해서도 휑한 파주 전역에 산업단지 농공단지 유치를 위한 힘을 모으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적어도 들어온 신규 시민들이 다시 빠져나가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은 파주시의 책무다. 새 대통령이 공약한 파주의 비전 프로그램들이 조속히 시행되고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민 협치 프로그램도 가동되어야 한다. 단속만이 최선은 아니다.

융통성 있는 행정력으로 유입된 시민들을 보듬으면서 ‘최전방 도시’라는 오명에서 ‘가장 살기 좋은 문화 예술 환경 도시’로서의 콘텐츠를 살려나간다면, 파주시도 곧 100만 시민으로 들어찰 것이다.

▲전향규
전 서울신문 기자/KBS출입기자/KBS시청자위원회 네트워크 사무총장/THE ZENITH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