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복지는 돈이 아닌 주변 관심의 문제다.
수정 : 2013-06-18 14:04:04
양운모 사단법인 겨자씨 사랑의 집 이사
복지는 돈이 아닌 주변 관심의 문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를 들어 요즘 정치사회에서 보편적 복지가 화두인데, 복지는 경제적 자본주의로 사회주의를 해결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안 된다고 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진정한 사회의 의미 있는 복지를 실현하기 어렵다. 내 이웃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라면 나 자신도 밥이 안 넘어갈 정도의 마음이 있어야 진짜 복지사회가 이뤄진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으로 남의 돈 걷어 나눠주는 것밖에 안 된다.
기부와 자선이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측은지심에서 나오는 사회. 그것이 복지사회이고, 복지사회의 정의로 교육할 일이다. 사랑과 나눔을 스스로 우러나 실천하는 사회가 진짜 복지사회의 길이라고 본다.
오죽하면 경제학자들도 ‘사랑의 경제학’이라는 말까지 한다. 학자들은 유럽의 복지사회를 모델로, 그 밖의 해외 여러 나라의 복지사회 모델을 공부하고 사랑의 경제학을 논의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여름 폭우가 쏟아져 온 동네가 쑥대밭이 돼도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협동해 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해 가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손도 못 대고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마을이 있다. 그 과정과 형태를 보면, 그 마을 공동체의 바탕에 마을 사람들의 애정이 담겨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 달려 있음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모두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서로간의 애정이 없으면 경제학 이론이 존재할 수가 없다. 한데 인간의 심리는 경제의 기본이 된다면서 그동안 제도적이고 과학적인 것만 강조하다 보니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 지나치게 간과되었다.
왜 우리가 돈을 벌거나 취직을 하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좋은 집, 좋은 차, 출세 같은 것은 수단이고 삶의 궁극적 목적이 아닌데도 이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우리는 살아가면서 미치도록 스스로 우러나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이상주의자처럼 삶의 순간순간이 물고기를 갓 잡았을 때처럼 펄떡펄떡거리는 그러한 힘찬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출세를 한다 할지라도 생활 주변에서 자기 소신대로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사람과는 삶의 질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아픔을 견디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들어 기술은 눈부시도록 발전해왔는데, 사람들은 정작 행복하지 않고 세대와 계층과 주변 사람들 간의 갈등으로 더 분란해진 것 같다.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 공명실이나 목욕탕에서 노래를 부르면 훨씬 크고 잘 부른 것같이 들리는 효과를 내는 ‘에코 체임버’ 장치의 기능처럼, 요즘 인터넷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해 같은 성향의 부류들끼리만 모여 집단의사를 표출하고 이것이 증폭되어 그 집단의 의사와 논리만이 진리와 진실인 양 느껴지게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은 거의 묻혀버리는 현상들을 종종 본다.
특정한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사회관계망 서비스인 SNS가 역으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조차 없게 하거나 설사 다른 생각을 펼친다 하더라도 엄청나게 공격받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고 다른 생각은 용납하지 않는 자기들만의 집단이 자꾸 생겨나고 확산돼 가는 추세여서 분란이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갈등 요소가 많은 것도 남을 배제한 ‘우리끼리’만이 넘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끼리’ ‘끼리끼리’만이 모이는 일부 배타적 공간인 인터넷에서 나와 자신과 다른 생각들이 넘치는 현실공간인 거리로 나올 필요도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대개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하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기 자신에게만 호의적이다. 어떠한 견해이든 행동양식이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다 같이 망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모든 계층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여론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보고 공유하게 되면, 서로서로 존중할 수 있고 남다른 측은지심으로 주변을 돌아보거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실천이지만 우리가 다시 한 번 이웃을 돌아보고 생각한다면 큰 행복의 복지시대를 무난히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