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파주문화원
휴암을 통해 파주 3대 서원의 합사·분사 과정 거쳐
[파주시대 김영중기자]= 파주문화원은 지난 1월 말 남계 박세채 선생의 평전에 이어 휴암(休庵) 백인걸 선생의 평전을 단행본으로 발간, 휴암 선생에 대해 재조명했다.
특히, 휴암 백인걸 선생 선양을 위해 그간 '휴암선생 논총'과 '휴암선생실기' 번역본이 나왔으나 단행본이 없어 생애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임진왜란 때 유고가 소실돼 1차 사료가 부족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책 발간의 의미는 커 보인다.
파주문화원은 2021년부터 매년 파주의 유학자를 발굴하고 있는데, 율곡 이이·남계 박세채에 이어 이번에는 ‘청백리 유학자, 휴암 백인걸의 삶과 사상’을 발간했다. 책은 문화원 부설인 파주학 연구소 차문성 소장이 지었다.
실로 ‘휴암선생실기’가 1830년 발간된 후 종합적인 단행본이 발간된 것은 195년만인 셈이다. 앞서 2024년 10월에는 파산서원 고사목을 이용해 휴암선생을 모신 용주서원(월롱면 덕은리 산 69번지) 편액을 새로 제작하기도 했다.
■휴암 백인걸의 생애를 단편적이 아닌 다각적인 측면에서 조사·연구
휴암 선생은 우계 성혼의 스승으로서 사상계와 지역사회에 적지않은 영향을 줬음에도 그동안 학계와 지역에서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이는 생전에 많은 저술과 문장을 남겼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유고가 소실돼 1차 사료가 적은 탓이다.
이번 파주문화원에서 발간한 휴암의 평전은 318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으로 그의 생애를 단편적이 아닌 다각적인 측면에서 조사·연구해 생애 전모를 밝힌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으며, 책 발간을 통해 휴암 종중과 파주문화원 소장유물과 기록물의 연원도 밝혔다.
■파주 성리학의 정점으로 우계와 율곡에 큰 영향 미쳐
우계 성혼의 부친 청송 성수침은 휴암과 함께 조광조의 동문우(同門友)라 평생을 서로 가깝게 지냈다. 아들 성혼을 휴암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게 해 휴암 외손녀가 성혼의 아들 성문준과 혼인을 맺게 된다.
사제관계로 인해 훗날 휴암 일생을 적은 행장을 맡길 때 우계는 30년 문하에 출입한 자로 감히 사양할 수 없다는 솔직한 심정을 밝히게 된다. 행장은 모두 8,276자로 구성됐고 이를 바탕으로 해 김육과 송시열의 비지(碑誌) 문자도 완성된다.
또한 율곡의 사상과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휴암의 삶을 알아야 하고 휴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율곡의 글을 살피지 않으면 본말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상소를 올릴 때 이이의 문장을 인용한 일로 비난을 받았을 때 이이의 문장과 식견이 뛰어나 윤색을 했다는 그의 표현은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선생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휴암이 이들의 정점에 있었기에 율곡의 경제, 국방, 사회 정책이 구체화 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자운서원의 합사·분사 과정은 파주 지역학 연구에 새로운 과제 던져
이 책이 가진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존 서적의 답습이 아닌 지역학 연구에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파주에 있어서 자운서원·파산서원·용주서원 삼대서원의 개별적 분석에서 벗어나 합사와 분사과정을 연구해 종합적 시각으로 파악하고자 노력한 것이 돋보인다.
즉 지금의 자운서원은 호명산과 자운산의 두 시기로 나뉜다는 것이다. 호명산 사당의 동사에 율곡, 서사에는 휴암을 별도의 사당에 모신 후 이를 자운서원이라 사액을 받았다. 당시 청액을 주도한 사람은 휴암의 증손 백홍우다.
이후 호명산 자운서원이 무너져 율곡을 자운산으로 옮기자, 휴암은 임시로 파산서원에 모시게 됐다. 또한 휴암선생을 단독으로 제향하려던 용주서원이 사액을 못 받고 훼철되자 일제강점기 때 재건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휴암을 제향하는 자운서원의 건립과 합사·분사 과정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어 기존 자운산 자운서원에서 진일보해 종합적 문화콘텐츠 확대에 기여를 한다.
■파주와 이외 지역의 핵심 가치를 발굴해 가려진 의미 탐구
휴암은 원래 호명산에 율곡과 별도의 사당에 모셨지만 1686년 자운산으로 옮기게 되자 사액서원은 나주(남평)의 봉산서원만 남게 된다.
현재 봉산서원은 사당 일원만 남아 보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책의 저술과정에서 1970년대 후반에 세웠다고 기존에 알려진 유허비를 1919년 3월임을 밝혀 비 상단에 새겨진 태극문과 유사 백낙윤을 유교독립운동사와 관계했음을 밝힌 점은 괄목할만 한 일이다.
이외에도 이 책은 고증이 엄밀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단지 성리학에 머물지 않고 지역학과 문화유산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박재홍 파주문화원장은 “이번 휴암 백인걸 선생 평전 발간의 의미를 종합적 시각에서 지역 가치를 발견한 시도이며, 기호 철학의 산실 파주의 가치를 더 높인 매우 뜻깊은 발간 사업으로 평가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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