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 우리 앞에 선 남시원 대표. 그가 개척한 길 위에서, 타조들은 여전히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남시원 대표
타조와 함께한 30년, 남들이 걷지 않은 길··· 남 대표, 국내 타조 사육 1세대
주중엔 학생 단체, 주말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 줄 이어 체험 즐긴다
■ 심학산 기슭, 낯선 발걸음의 소리
경기도 파주시 심학산 자락, 여름 볕이 들판 위에 뜨겁게 내려앉은 오후, 바람결에 섞여 오는 묘한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규칙적이면서도 묵직한 그 소리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북소리처럼 울렸다.
눈앞에 나타난 건 사람보다 키가 더 큰 타조 무리. 긴 목을 치켜든 채 필자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조금씩 다가온다.
울타리 너머에서 그들의 눈은 유난히 반짝였다.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한 번 옮길 때마다 단단한 흙바닥이 ‘둥’ 하고 울렸다. 그 순간, 이곳이 결코 흔한 농장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하다.
우농타조농장 타조마을의 주인공 남시원 대표는 국내 타조 사육 1세대다. 그의 인생은 경북 영덕에서 시작됐다. 파주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에도 고향, 영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고향 쪽으로 눈도 안 돌아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곳에서 살게 됐죠.”
1976년에 젖소 홀스타인을 키우는 낙농업을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도시 개발과 인력난이 그를 밀었다. 23년간 쭉 해오던 천직 같은 낙농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아보려고 동남아 일대를 두루 다녀보았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 오키나와에서 타조 농장을 처음 봤다. “게으른 사람한테 딱 맞겠더라고요. 하루 세 끼 제때 안 줘도 되고, 병도 거의 없고, 오래 살고.” 그 무렵, 국내에서는 타조를 사육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정부는 타조를 가축으로 분류조차 하지 않았고, 사육법이나 질병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다. 남 대표는 해외 자료를 직접 번역해 농림부에 보내고, 제도의 틀을 만드는 데 발 벗고 나섰다.
남시원 대표는 2002년부터 15여 년간 사단법인 한국특수가축 협회장을 역임했다. 그 당시 타조에 관한 제반 법률(가축,도축,가공,유통 등)을 제정함에 있어, 정부를 상대로 장장 8년에 걸친 이해와 설득 작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으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홍보와 인식 부족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해 지금도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라며 안타까움을 말한다.
방문객이 타조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 긴 목을 쭉 뻗어 받아먹는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타조와 눈을 맞추는 경험은 도시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 타조의 세계, 그들의 언어
타조는 병이 거의 없는 비교적 오래 사는 동물이다. 수컷이 알을 품고 새끼 돌봄을 전담하는 독특한 습성을 지녔다. 발차기 힘은 놀라울 정도다. “무리 지어 다니며 발차기 힘도 강해서 사자도 함부로 못 덤벼요.”
타조의 세계는 철저한 서열 구조로 움직인다. 매년 3월이면 번식기가 시작되는데, 이때 수컷들은 암컷을 독차지하려고 서열을 두고 치열하게 싸운다. 여름이 지나면 서열이 바뀌고, 싸움에 진 수컷은 조용히 물러난다. 타조마을은 그들의 자연스러운 질서와 본능을 최대한 존중하며 운영하고 있다.
■ 사슴에서 타조로, 그리고 체험농장
남 대표는 한때 사슴 사육에도 도전했다. 그러나 FTA 체결과 외국산 녹용 수입 자유화로 국내에서는 가격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내 사슴을 정리하고 타조에만 집중했다.
대신 농장을 단순 사육장이 아닌 체험형 농장으로 꾸몄다. 볼거리를 풍성하게 하려고 마술 공연장과 그림 전시관을,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타조 인형 석고 색칠하기, 타조알 껍질 목걸이 만들기, 미니 호스 말타기, 30여 종의 동물들 먹이 주기 등을 함께 열었다.
주중에는 학생 단체, 주말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농장은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 그러나 찾아온 시련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 연이은 전염병 위기는 타조마을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코로나19 이후 단체체험 프로그램은 80% 이상 줄었다. “학교에서 단체체험 학습으로 오는 게 전부 끊겼어요. 그만큼 어려웠죠.”
남 대표는 버티기 위해 발 빠르게 전략을 바꿨다. 전성기에는 260마리를 키웠지만, 현재는 20여 마리만 두고 나머지는 위탁 사육으로 돌렸다. 대신 비어 있는 300평 규모 건물은 임대해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했다.
■ 타조에서 피어난 부가가치
타조고기는 지방 함량이 0.75%에 불과하고, 단백질·미네랄·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건강식으로 각광 받는다. 남 대표는 타조고기 전문식당을 운영했고, 타조고기와 뼈로 건강보조제와 타조 오일로 화장품을 만들어 전국에 유통했다.
타조마을의 특허받은 ‘뼈 건강 타조엑기스’는 타조의 뼈와 고기를 3일 동안 고온에서 장시간 끓여 만든 진한 농축액으로 한약재 추출물을 넣어 제조한다. 도핑테스트와 경희대 임상실험까지 거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보조식품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진행한 임상실험 결과 및 고찰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부종 억제 효과, 류마티스성 관절염과 같은 항염증 감소 효과, 혈청 중성지방 감소 효과, 혈청의 마그네슘(Mg)과 철(Fe)의 무기질 증가 효과, 간 독성 감소 효과 등 부종 억제 효과 및 관련된 항염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타조 오일은 클레오파트라와 시바의 여왕은 뜨겁고 건조한 사막의 기후로부터 자신의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집트, 로마, 아프리카 민족들은, 타조 오일을 화장품 외에 류머티즘, 찰과상, 화상, 피부병, 습진, 버짐, 피부 건조, 두피 건조 등의 염증의 치료 목적으로 수천 년에 걸쳐 이용했다고 한다.
타조 오일의 화학구조는 인간 피부의 구조와 매우 비슷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피부처럼 올레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각종 피부질환 및 부작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 가족과 함께 걷는 길
현재 타조마을은 아들 이석 씨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졸업 후 5년간 농업 종사 의무를 지키며, 농장의 새 주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아들이 있어서 마음이 놓여요. 하지만 앞으로는 체험형 관광과 제품 개발, 두 축을 함께 키워야 해요.” 타조마을은 타조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타고 놀 수 있는 미니 호스와 30여 종의 동물들을 사육해 다양한 볼거리와 먹이 주기 체험활동 제공한다.
■ 다시 도전의 시간
남 대표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타조고기 전문식당을 다시 열어도 승산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건비와 운영 부담이 발목을 잡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30년 전 무모하게 시작한 일이 이제 하나의 산업이 됐어요. 하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건 여전히 제 몫이죠.”
남시원 대표의 우농타조농장 타조마을은 단순한 사육장이 아니라, 국내 타조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기록이다. 들판 위, 타조들의 힘찬 발걸음처럼 그의 발걸음도 멈추지 않는다.
사진/우조타초농장. 글/김명익 객원기자
우농타조농장 타조마을은…경기도 파주시 교하로 595-15(동패동 615)
☎ 1800 -7778 (내선1)www.koreataj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