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로 시작되는 「푸르른 날」은 서정주의 시에 송창식이 곡을 붙인 노래이다. 10월에 이 노래를 들으니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 생각이 난다.
외국과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및 한국문화 보급을 위해 설치한 세종학당이 88개 나라에 256곳이다. 한글을 배우고 싶은 입학 대기자가 1만 5천 명이나 되어 300개로 늘릴 예정이란다.
그런데 586돌을 맞은 우리나라의 한글날은 조용했다. 신문도 방송도 조용했다. 국기를 단 가정도 많지 않다. 한글날의 유래와 책 한 권 읽자는 이야기도 없다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은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최초이다. 한글을 창제하신 분, 목숨 걸고 한글을 지킨 분들. 무명작가부터 셀 수 없는 문인들이 길(路)을 갈고닦은 결과이다.
꽃이 활짝 피는 화려한 개화 순간을 담는 인터벌 촬영기술이 생각났다. 카메라를 역순으로 돌리면 씨를 심고 가꾸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촬영기술이다.
578돌에 활짝 핀 한글문학의 꽃부터 역순으로 한글 성장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반만년 역사에서 586년을 뺀 기간 우리나라는 문자 없는 나라였다. 조선 건국 초기로 돌아가 보면 새 나라의 최우선 과제가 문자 창제였을까?
문자가 없어 문맹인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신 분은 국왕 한 분뿐이다. 「훈민정음 창제」를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얼마나 몰두하셨으면 눈병이 도져 휴양을 갔을까?
그렇게 창제하신 「훈민정음」을 반포하셨을 때 축하하고 잔치를 벌이며 국경일로 정했을까? 상황은 정반대였다. ‘아니 되고, 불가합니다’의 상소가 빗발쳤다.
상소 내용은 더 한심하다. “언문 창제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므로 사대해온 법도에 어긋난다. 자기 나라 문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이다”라는 등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언문 없이도 잘 살아왔으니 한문을 문자로 쓰자는 주장이다. 그들은 왕의 신하였으며 최고의 정치 파트너들이고 최고의 참모였다. 자신들은 사대부이니 어리석은 백성들과 다른 특별대우를 요구했다.
백성들을 입 닫고 까막눈으로 살게 하라고 왕을 압박했다. 대쪽 같은 선비의 기개와 민족정신도 다 팽개친 채 기득권만 주장한 만행이었다. 오늘의 정치 상황과 똑같다.
카메라를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 현장으로 돌려보자. 조선이 서양과 맺은 최초의 조약문이 한문이다. 청나라 이홍장은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이라는 문구를 넣으라고 압박한다.
미국 측 로버트 윌슨 슈펠트가 조·청 관계는 의례적 관계일 뿐이라고 거절하여 ‘속국’의 오명을 남기지 않았다. 미국 공사관이 서울에 개설되고, 민영익·서광범·유길준 등을 보빙사(답례로 외국에 파견하는 사절단)’로 미국에 파견한다.
보빙사들은 한문 신임장을 ‘한글’로 번역하여 미국 신문 뉴옥헤럴드에 기고하는 기개를 발휘 했다.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글(알파벳)’을 가진 나라임을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드러낸 쾌거였다.
카메라를 1900년대로 돌리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식민지 상황이다. 주시경 선생이 우리 글을 지키기 위해 ‘한 나라의 큰 글, 세상에서 첫 번째 가는 글’이라는 뜻으로 ‘한글’로 이름을 정한다.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기념식을 열고, 1928년부터 ‘한글날’로 기념한다. 그것도 잠시 조선총독부는 1938년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고, 조선·동아일보와 ‘문장’ 등 한글 신문과 잡지들을 폐간한다. ‘조선어학회’사건을 조작하여 한글학자들을 고문하여 한글을 뿌리째 뽑는 민족말살정책으로 한글이 사형선고를 당했다.
“국어를 굳건히 지키면 감옥의 열쇠를 가진 것과 같다”는 마지막 수업의 교훈만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비책이었다. 1960년대 이후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육열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한글을 수출하는 문명국이 되었다. 문맹율 제로(Zero)의 대한민국 수교국은 193개국이다.
한글 신임장과 한글 계약서가 표준이 되도록 우리 말과 글을 세계 시민의 언어로 발전시킬 책임이 우리의 남은 과제이다. 지금 우리는 보빙사들의 지혜와 담대한 기개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한글 창제를 목숨 걸고 반대한 최만리파로 사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AI 시대를 선도할 제2 제3의 세종대왕 같은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최만리 닮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중독자들로 살고 있는지도 돌아볼 때이다. 자신들만의 특권을 위해 이리 막고 저리 틀면 고성능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다.
인류를 위해 공헌 사람들의 업적은 책으로 전해진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 세계인들이 자원하여 배우려는 한글을 보유한 민족답게 책 읽는 문화를 만들자. 글 없이 살던 조선인들의 한을 푸는 유일한 보답은 책을 읽는 것이다.
한글을 목숨 걸고 지킨 분들에 대한 보답 또한 책 읽는 노력으로 갚아야 한다. “독서는 어디에든 갈 수 있는 할인 티켓(documents ticket to everywhere)”이다.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면 책을 읽자. 「훈민정음 창제」의 교훈은 좋은 씨를 뿌리면 알찬 열매를 맺는다는 웅장하고 담대한 희망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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