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우리 나라는 동서고금의 세계사에 36년의 식민지와 3년의 6.25 전쟁을 겪으며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한 나라이다. 폐허를 딛고 일어선 유일한 국가로 세계사의 한 폐이지를 당당하게 담당하는 최초의 국가이다.
70여 년의 짧은 기간에 이루어 낸 성과는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하여 세계의 모델 국가로 자리매김할지 가늠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 걸린 올림픽 최초 금메달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서 손기정 선수가 목에 걸었다.
아쉽게도 ‘맞장구치기’ 어려운 일제 식민지였다. 40년 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온 국민은 마음 놓고 ‘맞장구쳤다’ 이제 동·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당연지사로 온국민의 ‘맞장구치기’는 계속된다.
세계사에 기록된 또 하나의 ‘맞장구치기’는 1967년 처음 참가한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메달 순위 4위에 이어 2019년까지 총 30번 참가해 19번 메달 순위 1위 기록이다. 1977년 제23회 올림픽부터 1991년 31회 올림픽까지 9년간 메달 종합순위 1위의 9연패를 기록했다.
여자 양궁 대표선수들이 파리 올림픽에서 단체전 10연패를 이루어냄으로 우리는 ‘맞장구치는’ 재미는 계속 된다.
시야를 조금만 돌려 보면 서양인들의 독점 분야인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다양한 기악 분야 1등, 성악 분야 1등, 발레, K-POP, 영화, 드라마, k-푸드, 반도체, 원자력, 조선업과 방산 분야까지 한국인이 1위 하는 종목은 셀 수 없고, 눈 뜨면 새로운 기록이 나타난다.
그런데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절대로 1위를 해서 안 되는 분야의 1위도 있다. 2004년 이후 20년 넘게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꼴찌를 해도 되고 통계 명단에서 아예 빠져야 할 ‘자살률’이다. 지난해 자살 사망자 수는 1만 4439명(잠정치)으로 2011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욱 심각한 우려스러운 문제는 최근 12년 새 다른 연령층은 현저하게 줄었는데 10대만 유일하게 오르는 청소년 자살률이다. 고군분투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는 사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돌보지 못했다. 따돌림,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스트레스, 대인기피증 등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참다 참다 극단적 선택을 한다.
“집착하면 눈을 잃는다”고 한다. ‘자살공화국’의 웅덩이에서 뻐져 나오기 위해 이념의 눈, 편견의 눈, 욕망의 눈, 이기심의 눈, 비난의 눈을 버려야 한다. 아무리 귀해도 사람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다. 부와 명성과 권력에 집착하느라 잃어버린 ‘공감의 눈’을 회복해야 한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에 마당 넓은 집에 아이들이 모여 소꿉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정다움의 ‘공감 마당’을 회복해야 한다. 주거니 받거니 ‘맞장구치기’로 혼연일체의 ‘마당놀이’를 살려내야 한다.
‘맞장구치기’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적절하게 호응하고 동의하며 공감하는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파퍼먼스로 우리 조상들의 지혜였다.
우리는 툭하면 ‘마음에 든다’, ‘안 든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마음에 든다’는 말은 ‘상대의 말이나 행동, 표정과 마음이’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은 상대가 마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생명을 살리는 ‘맞장구치기’는 정확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사를 다시 쓰게 만든 저력은 ‘맞장구치기’였다. ‘하면 된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할 수 있어’를 만든 ‘공감 정신’이었다.
그분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대한민국의 산업역군들인데 “50대는 일이 없고, 60대에게는 낙이 없으며, 70대에게는 이(齒)가 없다. 80대에게는 처(妻)가 없고, 90대에게는 시간이 없고 100세에게는 ‘다없다’”며 조롱한다.
그분들에게서 ‘맞장구치고 신명 나는 공감’의 매력을 배워야만 대한민국의 자살률 제로 시대를 맞을 수 있다.
이제 층간 소음도 참지 못하는 ‘망치 증후군’을 버려야 한다. 망치를 든 사람의 눈에는 못 만 보여 튀어나온 것은 모두 못으로 보고 망치로 내려친다.
이런 가운데 회복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희망 메시지’가 있다. 투르키에 북부 폰틱(P0ntic) 산맥 고지대 마을 쿠스코이 주민들은 휘파람으로 소통을 한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일상 대화의 90%를 ‘휘파람어(새의 언어)’로 소통한다. 약 400년 전부터 험준한 산악지형에서 이웃들과 소통하는 언어를 만들었다.
쿠스딜리(kus dill, 새의 언어)는 인류가 구사하는 가장 높은 주파수(4,000HZ) 언어로 5km 너머와도 소통할 수 있다. 혀의 위치와 숨의 크기 등으로 소리의 강약과 고저장단을 조절하는 쿠스딜리는 ‘우리의 맞장구 치기’와 닮았다.
우리도 70%가 넘는 산지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소통하는 쿠스코이들처럼 ‘맞장구로 공감’하며 살아냈다. 우리 앞선 세대들은 그렇게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다정함은 강하고 귀한 삶의 지혜이다.
다정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가 배우는 이유는 마음과 생각과 사상이 다정하고 자유로워지기 위함이다. 나 자신과 우리 이웃을 구하는 방법은 악당을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다정하게 ‘맞장구치는 것이다.
“인생을 어깨 위로만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머리를 제외하면 전부 썩어 입만 살아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남 탓? 조건 탓, 이 탓, 저 탓 ...탓...탓. ‘말’의 홍수를 넘어 전쟁터가 된 이 시대에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유일한 길은 ‘맞장구 잘 치는 것’이다.
이것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희망 메시지로 옳은 일이다 “옳은 일은 오래 걸려도 옳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