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아 칼럼위원(한국문인협회 회원(중앙/파주))
2. 이상한 그릇(4번째)
‘모래 속에 묻어 두려면 바닥이 뾰족해야 한단 말이지.’
그릇을 모래 속에 쉽게 묻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힘을 많이 쓰지 않고 모래 속에 묻으려면요. 처음엔 밑이 뾰족하면 땅을 힘들게 파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꼬맹이가 한참 동안 말없이 궁리하고 있는 사이에, 작은누나들이 큰누나와 마음을 맞춰 가며 여러 개의 뾰족그릇을 만들어 냈어요.
누나들의 다음 숙제는, 흙을 빚어 만든 그릇을 불에 구워서 단단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꼬맹이는 아직 누나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지요. 형들에게 눈총을 주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안 되니까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어요.
누나들도 그릇을 만드는 중에 가족들이 가져온 먹을거리를 챙기랴, 막내를 돌보랴 얼마나 바쁘겠어요. 그런데 큰누나는 막내의 투정까지 다 받아 주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만든 그릇을 깨뜨려 버리면 얼마나 아까워요. 보통 누나들과 다르게, 큰누나는 오직 좋은 그릇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밑이 뾰족한 그릇을 보고 이상하다고 불평하니까 큰누나가 그 그릇을 던져 버리는 거예요. 누나들의 깊은 생각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말이에요.
꼬맹이는 직접 그릇을 써 보고 나서야 그 까닭을 알 수 있는 법이라 말하고 싶었어요. 너무 어려서 말을 들어 줄 어른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말이에요.
마을 사람들이 의심하는 눈치를 주어도 큰누나는 한 번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어요. 큰누나의 씩씩한 태도에 누나들은 모두 말없이 따랐지요. 하루하루가 저물 때마다 꼬맹이는, 다급한 때에 더 침착해지는 누나들이 존경스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