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이미 많이 깊어진 하늘이다.
그만큼 제법 많이 깊어진 가을이다.
그러고 보니,
계절은 온도의 변화를 통해 느끼기에 앞서 하늘의 깊이를 통해 인지되었던 거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가을은 하늘을 통해 조금 씩 조금 씩 깊어지고 있었다.
하늘의 복판을 이리저리 가로지른 고압선들의 행렬이 복잡하다.
그 선 위에 무엇이든 얹으면 바로 이야기가 될 거 같은 하늘이 바로 그 계절의 하늘이다.
여름에는 여름의 무엇이,
가을에는 가을의 무엇이,
겨울에는 또 겨울의 무엇이 얹혀진다.
그러면 그대로 그 계절의 이야기가 된다.
음표를 걸면 아름다운 선율의 악보가 될 것이고,
꽃을 올리면 새들을 부르는 화원이 될 것이며,
숫자로 채우면 살아가야 할 날들로 빼곡한 희망의 달력이 될 것이다.
그렇게 그대로 우리들 삶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느 날 무심코 담아 두었던 하늘이 있다.
그 하늘은 어느새 가끔씩 꺼내 보는 하늘이 되었다.
불러내어 이야기를 입히곤 한다.
가로 줄에는 이런 이야기,
세로 줄에는 저런 이야기.
썼다 지우고 또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입힌다.
쓰지 못할 이야기도,
영원히 지워버릴 이야기도 없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기에,
모든 걸 품어주는 하늘이기에.
그렇게 오고 가는 계절이기에.
담지 못할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오늘도 꺼내본 하늘이다.
하늘은 이미 많이도 깊어진 가을이다.
우리네 삶도 어느새 가을의 이야기로 가득해졌다.
그 이야기들에 행복이 가득 차기를, 그리하여 그 이야기들을 수확하는 기쁨이 넘치는 계절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