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맹자가 말하기를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면 치욕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孟子曰 無恥之恥 無恥矣)
부끄러움이 사라진 세상에 살고 있다. 바야흐로 부끄러움과 비굴함이 동일시되는 시대이다.
그래서인지 잘못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더 당당하고 뻔뻔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부끄러움을 느끼면 마치 비굴해지기라도 하는 냥 도리어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그 커다란 목소리 뒤로 얼른 부끄러움을 감춘다.
꼭꼭 숨기고 파묻는다.
부끄러움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지고 커다란 목소리만 남는다.
커다란 목소리가 잦아든 자리이자 본래 부끄러움이 있었던 자리는 비굴함으로 대체되었다.
잘못을 저질러 지탄을 받게 되었을 땐 그저 비굴한 웃음 한 번 짓는 걸로 그만이다.
잘못 따위 그렇게 쉽게 털어내 버리면 그만이다.
안 그래도 바쁘고 힘든 세상인데 꼭꼭 숨겨놓은 부끄러움을 굳이 끄집어 낼 이유도 없다.
그렇게 부끄러움은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간다.
비굴함의 끝이 치욕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망각하였다.
치욕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부끄러움이라는 것도 잊었다.
치욕은 현자들에 의해 땅속 깊이 봉인되어 있었다.
그런데 부끄러움을 숨기려 파기 시작한 땅에서 치욕은 비굴함의 끝을 잡고 세상 밖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이제 부끄러움이 없음을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질 것이고 그 커진 목소리를 타고 치욕은 더 넓게 퍼질 것이다.
치욕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면 맹자의 한 마디가 몹시도 그리워질 것이다.
(孟子曰 無恥之恥 無恥矣)
산에 오르면 발 아래로 넓은 세상이 보인다,
저 멀리로 구불구불 구비진 강도 보이고, 길게 뻗은 길도 보이고, 드넓은 들녘도 보이고, 높이 솟은 건물들도 보인다.
아니, 보였었다.
그런데 요즘은 온통 뿌옇기만 하다.
미세먼지 때문이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섬뜩해진다.
혹시 내 마음 속 부끄러움에도 저렇게 뿌연 먼지가 뒤덮여 있는 건 아닐까? 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마음속으로 맹자의 가르침을 되뇌고 또 되뇐다.
(孟子曰 無恥之恥 無恥矣)
한해가 또 저물어간다. 새해에는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하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孟子曰 無恥之恥 無恥矣)
치욕을 피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