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며칠 전, 새벽 산책길이면 늘 지나치게 되는 농막의 철망 사이로
고개를 내민 탐스런 꽃봉오리를 만났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농사 준비로 한창 바쁘신 농부 어르신께 여쭤보았다.
"이 탐스런 꽃봉오리는 혹시 작약인가요?" 아니라고 하셨다.
"그럼 모란인가요?" 또 아니라고 하셨다.
한층 커진 궁금증과 호기심이 발동하여 꽃 이름 좀 알려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함박꽃이야. 피면 엄청 크고 예쁠 거야. 곧 필 테니 며칠만 기다려봐."라는 답을 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작약꽃이라는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보았더니 '함박꽃(작약꽃)'이었다.
그러니까 함박꽃과 작약꽃은 같은 꽃이었던 것이다.
작약꽃을 좋아한다.
꽃이 크고 탐스러운데도 불구하고 소박하고 단아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그 화려함 때문에 '동양의 장미'라고도 불리고,
'꽃중의 왕'이라 칭송 받는 모란에 비견하여 '꽃중의 정승'이라 불린다고도 하지만,
내 눈에는 화려함보다는 순박함에 가까운 꽃송이가 정승보다는
민초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 꽃이다.
며칠 후, 다시 새벽 산책길에 만난 함박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내 기억 속 작약꽃보다 훨씬 크고 탐스러웠다.
겹작약꽃이었다.
농부 어르신이 굳이 함박꽃이라 칭하시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쯤 되면 민초도 아니고 정승도 아니며 왕보다 높은
황제쯤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탐스러움이다.
그럼에도 꽃말은 '수줍음'이다.
정승도 왕도 황제도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권력의 자리는 여전히 있다.
그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함박꽃(작약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더하여 그들이 가지고자 하는 권력의 속성이 화려함이나 탐스러움이 아니라
순박함과 수줍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상에 가까운 생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미련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얼마 남지 않은 지방선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도 중요하지만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지방선거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지방선거로 뽑힌 권력이야말로 민초들의 삶에 좀 더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박하고 단아하게 민초들의 삶을 보살필 수 있는 권력이었으면 좋겠다.
부디, 정의 앞에 수줍음을 알고 불의에는 당당하게 맞설 줄 아는 권력이었으면 좋겠다.
함박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