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오토리버스(auto-reverse) 기능은 재생 중이던
카세트테이프의 A면이 다 끝나면 자동적으로 역회전하여
B면을 계속 재생시키는 기능으로 처음 선보였을 당시로는
가히 혁명적인 기술이었다.
재생이 종료된 테이프를 꺼내고 돌려 다시 카세트에 집어넣는
불편한 행동을 없앴다는 의미보다는 멈추지 않고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마치 음악에
영원을 불어넣었다는 착각마저 일으키게 할 정도의
정서적 영역의 혁명적 발명이었다.
이 역사적인 발명은 나의 청춘에도 정서적 물길을 내었지만
그 물길 위에 약간의 게으름을 부초처럼 띄운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겨울에만 꽃을 피운다는 동백꽃이 벌써 지기 시작했다는 건
길고 추웠던 겨울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계절은 자동 순환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지나야 여름이 온다.
봄을 앞둔 겨울이 역회전하여 겨울이 다시 시작되거나
가을로 돌아가지 않는다.
오직 정해진 순리대로만 멈추지 않고 흐른다.
억지로라도 이름을 붙이자면 자동 진전(auto-go forward)쯤 되겠다.
무덤덤하던 이런 순리에 언제부터인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찾아온 새로운 정서적 물길이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물길 위에 겸연쩍은 눈물 몇 방울
섞인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동이라는 말을 이제는 빼도 되겠다.
그냥, 그렇게, 순리대로 흘러갈 뿐이니 수동이어도 자동이다.
조매화(鳥媒花)인 동백꽃의 꿀을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동박새는 동백꽃이 다 떨어지면 떠나기 마련이다.
역회전에 역회전을 거듭하다 보면 테이프는 늘어지기 마련이다.
세상사 모두 그저 순리대로 흘러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