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향신채 가운데 채소로서의 재배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중해 동부 연안이 주요 생산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강화도와 북한 등에서 재배된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라비아 상인들이 드나들던 뱃길이 있었던
파주에도 이 향신채가 전해져 재배되었으니 이로 인해
이 향신채를 활용한 음식이 보편화 된 지역 중 한 곳이 파주다.
파주에 살게 되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음식이 바로 이 향신채로 담근 김치였다.
웬만한 음식은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편인데 파주에 처음 이사를 왔을 무렵에
지인께서 귀한 음식이라며 내놓은 이 향신채 김치를 처음 먹는 순간만큼은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여
표정관리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 향신채에 대한 첫 기억은 그렇게 아찔했다.
그 뒤로 약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파주에서 살다보니 나도 모르는 새
이 향신채의 맛을 알게 되었다.
삼겹살을 먹을 때 곁들이는 맛이 1등.
이 향신채를 넣은 무생채 무침이 2등.
커리에 넣은 특유의 향이 3등.
이런 식으로 등수를 정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한 향신채가 되었다.
이 향신채를 재배하는 작은 밭을 산책길에서 만나게 된다.
늘 짤막하게 자란 모습이었다.
‘얼마나 좋아하면 자랄 틈도 안 주고 싹싹 베어가버리네.’
신선한 이 향신채를 날마다 먹을 수 있는 농부를 부러워하며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내 허리 높이에 육박할 정도로 자랐고 심지어 꽃까지 피웠다.
처음 보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져 주변에 자초지종을 수소문해보니,
아마도 올해는 씨앗을 받는 것 같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추측컨대 이 향신채를 너무도 사랑하는 농부는
좀 더 재배면적을 늘리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베어서 먹기보다는 씨앗을 받아서 좀 더 안정적이고
많은 양의 수확을 거두겠다는 선택을 했다는 뜻이다.
황금 알을 낳는 닭의 배를 가르기 보다는 날마다 하나씩 황금 알을 얻겠다는
치밀한 계획의 실천과도 같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예쁜 꽃을 보게 되었다.
꽃말이 ‘지혜“라고 하니 농부님의 지혜로운 선택과도 기가 막히게 맞닿아 있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특유의 향이 코끝에 살짝 걸린다.
서두르던 걸음을 살짝 늦추고 꽃을 찾는다.
꽃을 보면서 하루를 계획한다.
큰 실수 없는 하루를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고수의 향에는 그런 지혜가 담겨져 있다.
고수꽃이 한창인 요즘이다.